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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서 배웁니다

(2015년 12월 9일 지금은 살짝 부끄러운 신입교사의 일기)

아이들에게서 배웁니다.

어제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남자아이들을 불러 혼을 내었지요. 우리가 친구나 형, 누나를 대하는 모습이 어떠한지, 그리고 서로를 대하는 모습이 어떠한지 얘기해보면서 꾸지르기도 했답니다. 학기 말에 유난히 도드라지게 보이는 반의 모습들로 교사 스스로 조급해지고 마음이 답답해졌습니다. 아이들을 붙잡고 마음나누기도 하고, 혼을 내기도 하고, 평화의 징을 쳐서 오랜 시간 무거움을 견뎌도 보고… 할 수 있는 것은 해보려고 노력했지요.

사실 참 마음이 그러합니다. 아이들의 자발성, 야생성, 놀이성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느 때부터 인가 아이들이 그림처럼 움직여줄 때 그때 만족감을 느끼고 성취감을 느낀 것은 아닐까.

“내가 이만큼 노력했는데. 왜 변하지 않는거지?” 하는 조바심과 욕심이었지요.

친구 때문에 힘들다고 하거나 학교 다니기가 힘들어요 하는 아이들이 유난히 늘어가는 요즘 제 마음 안에 평점심이 사라지고 작은 자극에도 흔들리고 있더라구요. 그리고 어느 순간 아이들을 다그치고 속상해 하고. 밤새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하고 일년을 돌아보며 내가 잘하고 있는가 하는 불안감,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왜 더 행복하고 평화로울 수 없을까,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뭉게뭉게 올라왔더랍니다. 교실에서 마음이 계속 편하지가 않았지요. 교사의 혼냄도, 다독임도, 교사의 머릿속에서 나온 어떤 일련의 활동들은 잠시일 뿐 아이들 안에 깊이 스며들지 못한다는 것을 느낍니다.

요리를 야무지게 하는 여자아이들 네명을 아이들과 추천해서 쉐프로 뽑고 남녀 비율을 나누어 모둠을 나누었지요. 그리고 ‘쫄깃쫄깃 단호박 전병 만들기’ 요리 방법이 적힌 인쇄지만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쉐프를 중심으로 요리 순서를 살피고 필요한 재료들을 정해서 옵니다. 그러면 교사는 주방에서 아이들이 말하는 재료와 도구를 나누어 주었지요. 몸으로 하는 일을 할 때 참 반짝이는 아이들이지요. 누구하나 빼지 않고 오히려 더 열심히 하려고 도구를 가지고 싸우기도 합니다.

전체 요리를 하는 과정을 야무지게 잘하는 것이 여자아이들의 몫이라면 칼로 단호박을 자르고 버너에 불을 올리는 등의 위험도와 힘이 필요한 일은 남자아이들에게 맡기라고도 해봅니다. 과정에서는 서로 일을 나누어 진행하고 있었지요.

자른 단호박을 찌는 동안 수산나 선생님께 도와 드릴꺼리가 있으면 주세요~ 했더니 양파 까기와 파 씻고 다듬어서 자르기 등의 일거리를 일부러 찾아서 주십니다. 아이들은 특별한 불평 없이 먼저 일거리를 받아서 열심히 합니다. 일하는 모습은 이제 4학년이 될 준비를 해가는 듯합니다.

 

이때의 아이들은 몸으로 익히고 경험하는 것이 더 필요하구나 새삼 아이들을 보며 느끼지요. 만든 음식을 나누어주는 것을 기뻐하고 맛있게 먹고 뒷정리까지 책임감있게 해냅니다.

어제는 4교시에 아이들과 교사 대 아이들로 3가지 대결을 하였습니다. 서로 대결 신청을 하였는데 제가 낸 종목은 전체 가위바위보 아이들이 낸 종목은 피구와 썰매 타서 멀리가기 였습니다. 결론은 제가 2대1로 졌지요. 오늘 4교시에 하고 싶은 활동을 한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이 교사실로 와서 말합니다. “선생님! 저희 자유시간 주세요! 모두 동의 했어요!” “그래 알았어”

신나게 아이들은 밖으로 나갑니다. 무얼 하나 살펴보니 몇일 전부터 다양한 썰매를 만들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본격적으로 눈썰매장 공사에 들어갔습니다. 눈이 많이 쌓여있는 곳을 찾아 삽으로 깨고 퍼는 아이들, 썰매에 눈을 퍼 담아서 나르는 아이들, 썰매장을 평평하게 다듬는 아이들 일사분란하게 썰매장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제법 그럴싸하게 아이들 손으로 만들었다 본다면 훌륭한 3학년 눈썰매장이 완공되고 있지요. “그대신 싸우기 없기야! 혼자 노는 친구 친구 있으면 함께 하자고 하기!”

“네!” 하고 자신있게 대답하지요.

교사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도구로 얼음깨는 소리, 얼음 퍼내는 소리, 다지는 소리와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가 들립니다. 고개를 내밀고 “진짜 멋지다!” 라고 했더니 정말 환한 얼굴로 아이들이 위를 쳐다보며 말합니다. “아이들 다같이 하고 있어요! 저희 지금 같이 만들고 있어요!” 아이들 표정이 정말 정말 밝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어여뻐서 한번씩 가서 지켜봅니다.

오랜만에 남자아이들 여자아이들이 함께 무언가를 하는 모습을 봅니다. 아이들 안에서 자발적으로 한 뜻이 되어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정말 소중해 보입니다.

왠지 잠을 설치고 조바심나고 불안하던 저의 서투른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네요.

함께 몸을 움직여 하나의 어떤 것을 도전하고 완성해가는 힘.

몇일 속상한 마음을 이야기 하고 눈물 흘리던 아이들의 표정을 살펴봅니다.

볼이 빨개져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참 환하고 예쁩니다.

 

아, 아이들은 얼마나 변화 무쌍한지요.

아이들은 예측이 어렵고 언제나 과정 중에 있지요.

또 하루 이틀이 지나면 싸우고 속상해 하고 그럴수도 있겠지만. 오늘 아이들과 함께 몸을 움직이며 저도 참 편안하고 마음이 즐거웠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하는가. 무엇을 경험해야 하는가. 어떤 것이 소중한가.

교사가 어른들이 어떻게 조합해보려는 아이들의 관계 문제, 이것을 어떻게 접근하고 바라보아야 하는가. 또 교사 스스로도 어떻게 마음을 돌보아야 하는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배우고 또 생각해봅니다.

 

오늘도 아이들에게 배웁니다.

제가 뭘 가르치고 변화시키려는 욕심이.

참. 참.

참 나는 서투르고 욕심 많은 사람이구나.

 

아이들은 의도하지 않은 모습들로 저를 배우게 합니다. 참 귀하고, 고마운 날입니다.

zz

조소를 했다.

조소 이야기-6학년 000

우리는 5주 간 조소를 했다.
처음에는 동그라미를 만들었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책상에 굴리지 않고 손으로만 만들어야 해서 더 어려웠다. 그리고 선생님이 동그라미가 자기의 마음이라고 해서 더욱 더 열심히 만들었다.
두 번째 시간에는 동그라미의 면들을 꾹꾹 눌러 네모를 만들었는데, 이번에도 책상을 쓰면 안 돼서 엄청 힘들었다. 꾹꾹 누르는데 잘 눌러지지도 않고 누르는 부분이 어디인지 확실치 않아서 더 힘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사람의 얼굴을 만들었는데, 너무 버섯 같아서 그냥 모자로 만들었는데, 나중에 보니 은근 괜찮았다. 이건 생각보다 쉬웠다. 그 다음에는 사람을 몸까지 만들었는데, 처음에 마구 장난치다가 나중에 시간이 없어서 엄청 급하게 만들었다. 그랬더니 앉아 있는 돼지가 나왔다. 그리고 다섯 번째는 옆에 있는 사람과 같이 두 사람을 만들었는데, 도와주는 모습을 만들어야 했다. 나는 규리랑 했는데, 거지와 적선하는 부자를 만들었다. 난 머리 몸통 다리 팔을 따로 따로 만들어서 붙였다. 그리고 모자를 만들고 구걸하는 그릇을 만들었다. 규리는 부자를 만들었는데,
너무 다리가 짧고 굵었다. 그래서 내가 좀 늘리고 넥타이와 주머니를 달았다. 그랬더니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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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책이 있어요

한 권의 책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보일 때 그 감격은 얼마나 대단한가요!
차오르는 감동을 마음속에 도무지 담아둘 수 없어서
이 책 읽어봤냐 한번 읽어라 하며 사방팔방 권하기도 하지요.
좋은 책은 이미 다들 읽었는데, 뒤늦게 뒷북을 치며 말입니다.

초등교사들과 중등교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읽었던, 그리고 아직도 읽는, 언젠가는 읽게 될 책 몇 권 소개합니다.
우리 학교 부모님들과도 나누고 싶어서요. 물론 많은 분들 읽으셨겠지만요.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봄날샘의 밝은 눈으로 여러 교사들이 흠뻑 빠져든 ‘권정생과 이오덕의 손편지’를 엮은 책.
마침 이번 교사전형 토론회 책으로 선정되었네요.
두 분의 삶과 교육관이 우리 학교의 문화나 분위기와 알게모르게 닮아 있어서
아이들과 지내며 반 운영이나 교사로서 갈 길에 대해 고민이 들 때 이 책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네요.
신기하게도 이 책이 나한테 뭐라뭐라 말하는 소리도 들리고요.
제목이 참 평범한 인사말이라
‘선생님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나 ‘선생님 요즘 안녕하셨습니까’와 같은,
하십시오체 어미의, 비슷한 뜻 유사한 제목으로 달리 부를 우려가 있더군요^^
우리 교사들처럼 말입니다.

이 책을 다 읽고난 사람은 어떤 소망을 공통적으로 품습니다.
당장 실천으로 옮기기도 하지요.
꼭 읽어보세요. 내 안에서 무슨 바람이 올라오는지.

『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선생님의 마지막 저서일지도 모른다는 소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내용과 귀한 말씀을 기대하며 샀으리라 예상되는 책.
선생님께서 일관되게 말씀하시는 주제, 존재론 및 관계론과 인식론(공부론)이 심화확장된 책입니다.
밑줄 긋고 마음에 새기고픈 문장이 가득하지요.
마지막장, ‘희망의 언어-석과불식’을 읽다보면
“사람을 키우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우리의 역할이 참 중요하구나 느끼고
지금 내가 학교에서 많은 분들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이 입니다.
초록샘이 한 번 읽자며 은근슬쩍 권했던 책.
어떤 교사는 욕실까지 대동하며 곰곰 읽느라 너덜너덜해졌던.

『녹색평론』
중등교사회의 공부모임자료 및 수업연구자료로 쓰이고, 초등교사회에선 애독자들이 더러 있네요.
모두 알다시피 이 책은 결코 한정된 주제를 다루는 환경잡지가 아니죠.
세상 돌아가는 일을 꿰뚫는 지혜, 교육과 사회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시야를 기르고
한 사람이 우뚝 설 수 있는 철학적 바탕을 형성하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이번에는 어떤 글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지 두 달마다 기대하지요.

1991년 창간사 일부를 나눠볼게요.
“우리가 <녹색평론>을 구상한 것은 지극히 미약한 정도로나마 우리 자신의 책임감을 표현하고,
거의 비슷한 심정을 느끼고 있는 결코 적지 않을 동시대인들과의 정신적 교류를 희망하면서,
민감한 마음을 지닌 영혼들과 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나가기 위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이토록 숭고한 욕망이라니요!
뒷부분 좀더 읽어볼까요.

“고대 문화에서 흔히 그러했듯이, 사람의 명상할 수 있는 능력은 개인이 자기보다 더 큰 전체,
공동체나 자연이나 우주적 전체 속의 작은 일부로서 스스로의 존재를 느끼고 사색할 줄 아는 습관 속에서 길러지는 것일 테다.
인간은 좁고, 미약하고, 일시적인 자기의 개인적인 삶의 테두리를 늘 보다 큰 지평 속에 관계시킴으로써
영속적인 거대한 우주적 생명 활동에 스스로를 참여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고대사회에서나 토착 전통 사회에서나 혹은 이른바 미개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실현하는 방식이었다.”

생태학적 위기를 계기로 이렇게 대단한 잡지를 만들다니. 그것도 20여년 전에.
민감한 마음을 지닌 영혼들이여, <녹색평론>을 통해 서로 만나십시오.

『시인의 집』
10월 교사한마당 때, 몇몇 선생님들이 숙소에 모여 짧게 ‘낭송하는 밤’을 보내었네요.
그때 어느 쪽 어떤 내용 읽었는지 다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 자리에 함께 한 이들에겐 각별한 의미로 남았던 노란 책.
독일문학자이자 번역가인 전영애 선생님이 독일 시인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쓴 문학기행문이자 시해설서,
라고만 하기엔 소개가 빈약하군요.
시의 아름다움, 시를 읽는 눈의 귀함, 문학의 역할과 작가의 사명, 우리가 살아야 할 종류의 삶..
이 모든 것을 한 권의 책에서 보여줍니다.
브레히트, 하이네, 릴케, 괴테 등 독일시인들의 작품과 선생님의 단상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데
매우 아름답고 사유 깊은 문체로 우리를 ‘시인의 집’으로 데려갑니다.

“세상에서 가장 멀지만, 마음에서는 가장 가까운 그곳
어느날 우리는 한 시인의 집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린다”
뒤표지의 이 문구에 마음이 잠깐 흔들한다면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괴테의 말을 들어본 적 있는 이라면
전영애 선생님 책에도 흠뻑 빠질 게 분명하지요.

작가는 본인에게 삶의 부근이었던 시의 부근을 서성이며,
“한 생애의 발자국들 위에 내 발자국을 얹어본다”고 하셨지요.
우리도 함께 발자국 얹으면 어떨까요.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교사 개인이나 여럿이 감동을 받곤 하는 책 뒤에는 늘 귀한 존재가 있어요.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명을 주는 저자들. 그래서 우리들도 그분들 발치에 조금이라도 닿는 꿈을 꾸게 만드는.

모든 책은 나름의 맛과 가치가 있으니 각자의 취향대로 읽는 것도 좋은데 함께 읽는 것의 의미를 떠올려봅니다.
똑같은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다 보면
아이구야, 게으른 내가 드디어 책 한 권 읽었구나 하는 뿌듯함과 즐거움을 넘어서서,
한 집단의 시야와 힘이 되기도 한다는 걸 느껴요.
특히나 요즘처럼 어수선한 때에는 함께 읽기가 더 중요하게 다가와요.

정작 다독열독하시는 분들은 잠잠한데 제가 어쩌다 책소개를 하고 있을까 싶어요.
음… 저처럼 일 년에 겨우 몇 권 건지는 이들은 요란한 빈수레 티를 꼭 내거든요.
2015년 한 해, 교사들 덕분에 세 권이나 만났으니 이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ff

다른 질문을 던지는 힘

주어진 질문에 답을 찾는 힘도 중요하겠지만, 다른 질문을 던지는 힘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않았던 질문에는, 판을 달리 보는 시각과 독특한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질문을 던질 때, 비록 내가 답을 다 할 수는 없어도 참 좋은 질문을 했다고 반응하는 편이다. (아이들의 단골질문 “강아지나 고양이 키워요?”만 빼고^^)

우리 학교의 좋은 점이 여럿 있는데, 아이들과 함께 지내노라면, 내가 격려하는 종류의 인간으로 나 자신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최근에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는데, 내가 생각해도 좀 훌륭한 질문이 나왔다. 어느 정도로 훌륭했냐면, 내 질문에 스스로 감탄할 정도로 훌륭했다.
한 아이가 책상을 칼로 살짝 깎는 모습이 포착된 날이었다.
학교 물건 소중히 써야 한다는 잔소리와 여럿이 쓰는 물건을 함부로 썼다가 크게 혼이 난다는 엄포가 되풀이되는 요즘이었다. 배에 힘을 주고 어마어마하게 큰소리로 말을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엄청 혼이 나겠구나 싶었을 것이다. 오늘 같은 날 걸리면 끝장이구나 걱정도 되었을 것이다.

“방금 전 책상을 칼로 깎은 사람 손 들어보세요.” 말하니 아이는 손을 들지 않는다.
모두 눈을 감게 하고 다시 묻는다. 여전히 손을 들지 않는다.
순간,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방금 전 책상을 칼로 깎았는데 너무 부끄러워서 손을 못 들겠는 사람, 손 들어보세요.”
그러니 부끄러움을 아는 순진한 아이가 순식간에 손을 든다.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다른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아이들이여, 그대들이 4학년이지?
반장단으로 나올 사람은 유세문을 먼저 써오라고 했더니 나오겠다는 아이가 한 명도 없다. 유세문이 부담인가 싶어 몇몇에게 따로 물었는데 아니란다. 내 눈에는 분명 마음이 있는 것 같은 아이도, 별로 안 하고 싶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힌다. 유세문이 쓰기 싫어서 반장단 안 나오겠다는 아이는 이씨(李氏) 집안의 자손 딱 한 명뿐이었다.
반장을 뽑아야 하는 학년회의 당일. 후보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방법을 하나 제안한다. 종이를 나눠주고 거기에 반장, 칠판서기, 공책서기를 하면 좋을 사람들 이름을 적어보라고 했다. 자기 이름을 써도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표를 하나하나 열어서 이름을 부른다. 임시 칠판서기 민지가 재빠르게 이름을 받아적는다.
우리반 열네 명의 이름이 칠판에 빼곡하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골고루 나왔다. 일부 직책에서 많은 표를 얻은 아이도 있는데 그래봤자 두세 표가 전부이다. 남들 앞에 나서는 일은 절대로 안 할 것 같은 아이도, 자기 이름을 정성껏 적었다.
내 몸에 익은 방법으로 반을 꾸렸다가는 너희 안의 열망을 못 알아볼 뻔했구나.
우리 4학년들아! 그래, 다르게 다르게, 지금과는 다르게!
방과후에 뭐하고 놀 건지, 이따 쉬는 시간에 누구와 탁구를 칠 건지…
이러한 의논을 수업시간에 하는 아이들을 보다가, 나도 말 좀 하자고 야단을 친다.
우악스럽게 불리는 제 이름을 자기 귀로 들어야만 일시정지.
어떤 엄포에도 굴하지 않고 종알종알거리는,
무한 오토리버스 기능을 갖춘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과 몇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웃음이 나와 버린다.
(지금은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대단히 웃기고 어이도 없고, 규빈이네 4학년 시절처럼 놀라운 이야기였다.)
“난 수업시간에 너희들이 이러는 모습이 정말정말정말 익숙하지 않은데, 혹시 바뀔 마음이 있어?”
그랬더니 “네!” 합창을 한다.
아이들의 밝은 목소리에 이번에도 괜찮은 질문이 떠오른다.
“그럼 내가 어떻게 도와줄까?”

웃는 모습이 어여쁜 여자아이가 크게 대답한다.
“우리는 아무리 야단을 맞아도 몸이 저절로 움직여져요. 하지 말라고 계속 말해주세요!”
아이의 말처럼 내가 계속 말할 수 있을까? ‘말만’ 할 수 있을까?
아마 이놈의 성질머리 때문에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바뀌기보다는 아이들의 어떤 모습을 내 뜻대로 바꿔놓겠다는 의지가 앞서고 말 것이다.
매일의 숙제와 반복되는 연습을 통해서. 야단과 잔소리와 엄포를 앞세워서.

그래도 나 자신에게 기대되는 바가 있다면, 때때로 놀라운 질문들이 떠오르리란 사실^^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이 신비한 힘으로 돌아가는 우리 학교이므로.
내가 지금 만난 아이들이 신비한 힘에 사로잡힌 4학년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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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좀뱉어봤다

첫 과학시간. ‘요오드녹말반응’이란 제목 아래 실험을 한다. 녹말 성분은 딱 하나 밀가루뿐, 나머지는 설탕과 비타민C이다. 실험재료를 받은 다음 “먹어봐도 돼요?”라고 물은 몇몇 아이는 “네 이놈!”이란 호통을 듣고는 얼음이 된다. 과학시간에 위험한 재료를 쓰지 않으나 무엇을 받든 입으로 먼저 가져가면 안 된다고 당부를 했는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첫 질문이 시식요청이었던 게다. 아이들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다음 시간은 외국어 수업이니까 수업준비를 하세요.”라고 말하면 “무슨 공책 꺼내요?” 하고 자주 물으니!

이번 시간 우리의 관찰 도구는 눈이다. 먼저 세 가지 가루의 색깔과 알갱이 모양을 잘 보고 적어보라고 하니, 흰 빛깔의 차이를 섬세히 포착한 아이들에게서 아름다운 표현이 속출한다! 반짝이는 가루가 예쁘다고, 가루가 무척 부드럽다고 감탄을 한다. 역시 시인들이다. 그 중 어떤 아이들은 이렇게 쓴다.

밀가루 : 친숙하다.
설탕 : 친숙하다.
비타민C : 먹고 싶다. 참을 수가 없다. 맛있는 냄새, 눈길이 자꾸 비타민C로 간다.

객관적 관찰이란 무척 어려운 거다. 우리의 심리나 욕구는 감각기관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아이 눈에는 뵈는 게 없다. 오직 먹고 싶은 마음뿐.
“정말 멋있다! 색깔을 이렇게 쓸 수 있다니, 참 좋다!”
각자 성의껏 쓴 아이들에게 칭찬을 날리니 더 열심이다.

손가락에 침을 묻히는 아이들에게 맛이 정 궁금하거든 내 침 아무데나 묻히지 말고 조금씩 먹어보라 했다. 그러니 아주 열심히 맛본다. 책상 위에 흘린 가루 아까워하며. 우리의 아이들은 미각을 활용해 각 재료의 맛을, 그 재료가 놓인 배경의 맛까지 알아보는 중인 거다.

설탕에 요오드용액을 섞는다. 황토빛이다.
비타민C와 요오드용액을 섞는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남은 요오드용액을 밀가루에 들이붓는다. 까맣다. 먹빛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푸른빛이 감돈다.
아이들이 연달아 탄성을 내지른다.

한창 들여다보고 달라진 색깔을 공책에 옮겨적다가, 세 모둠에서 동시에 묻는다.
“이거 다 섞으면 어떻게 돼요?”

결과가 궁금하면 해보라고 하니 손들이 몹시 바쁘다. 큰 접시에 셋을 섞고 휘휘 젓는다. 밀가루 반죽이 여기저기 들러붙으니 묽게 만들려고 애쓴다. 잿빛 곤죽을 보고는 신기하다, 재밌다, 감탄사 연발이다.

그러다 어느 모둠에서 말한다.
“선생님 여기에 침을 섞으면 어떻게 돼요?”
궁금하면 입에 침을 잘 모아서 해보라고 했다.

그러니까 각 모둠의 남녀아이들이, 살짝 내외하는 마음 따위는 다 거두고, 둥그런 접시 위에 머리를 맞대고 사이좋게 침을 뱉어보는 거다. 끈적끈적한 침의 소유자는 입술에 붙은 가느다란 침실[絲]을 떼어내려고 입술을 달싹거리고, 다른 아이는 입안에 모은 자기 침을 뱉을 준비를 하고 있으며, 또 한 명은 친구가 뱉어놓은 침을 자기 침으로 조준할 기세인데다, 다른 아이는 아이들 틈새에서 접시 위의 곤죽과 친구들의 타액을 섞어보려고 나무젓가락 들고 대기중이다.
아이들은 마음을 모으고 침도 모으고 열심히 섞는다. 그러고는 접시에 코 박을 듯 가까이에서 대단한 색깔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이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난, 열한 살 나이에, 그것도 수업시간에 침 좀 뱉어본 아이들과의 일 년을 기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