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518여행 3일차

작성자
김 학민
작성일
2021-06-11 21:08
조회
651
"죽음의 행진은, 선생님이 죽음의 행진을 느껴보라고 해서 한번 상상을 해보기는 했다. 주변도 많이 바뀌었고, 옆에서 차 소리가 계속 들려서 집중도 잘 안 됐다. 그리고 길도 꽤 멀었는데 그 사람도 생각도, 고민도 좀 많았을 것이다. 길고 긴장되는 길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월 19일

지금 돌이켜 보면 참 많이도 걸은 날입니다.

오전에는 전일빌딩에 들렀습니다. 당시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는 빌딩 안으로 들어섭니다.

위로 올라가니 헬기 사격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설명을 해주시는 해설가 선생님의 열의가 느껴집니다.

해설가 선생님 말씀 중 기억에 남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

미얀마 국민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80년 광주에서 그렇게 무자비하게 유혈 진압한 것을 보고 배운 것 같아서 미안스럽다고요.



(전일빌딩 내부 전시를 둘러보고 있는 학생들)



(전일빌딩에서 도청, 분수대 방향을 내려다보고 있는 학생들)

전일빌딩에서 내려가서 바로 건너편 분수대로 향합니다.

물줄기가 시원합니다.



(분수대 옆 사적 기념비를 읽어보고 있는 학생들)



(분수대와 상무관을 둘러본 후 자유의 종 계단에서 잠시 쉬는 중)

점심식사 후 죽음의 행진이 시작됩니다.

어쩌면 학생들에게도 가장 기억에 남았을 일정일 수 있습니다.

왕복 두 시간을 걸었으니깐요.

80년 당시 계엄군의 탱크가 농성동까지 들어와 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 새벽 4시경.

온 몸으로 탱크를 막아내자며 전남도청 문을 나선 사람들.

41년 전 걸었던 그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가는 한 시간 동안은 침묵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걸었던 사람들이 무슨 할 말이 있었을까요. 그저 말없이 걷는 것 말고는요.

한 시간을 쉬지 않고 걸었습니다.



(죽음의 행진 경로를 걷는 중에 마주친 양동시장 사적 기념비)

양동시장을 지나고 돌고개를 넘어 농성동으로 진입합니다.

그 당시 걸었던 그 길을 따라갑니다.



(농성광장 사적기념비 앞에서 쉬고 있는 학생들)



(손재주 좋은 지욱이가 걷는 동안 접은 518 종이접기)

 

죽음의 행진은 1980년 6월 26일 오전 중의 일이었습니다.

이 행진으로 탱크는 방향을 틉니다.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전남도청 최후 항쟁까지 24시간도 채 남지 않은 때였습니다.

 

 

*덧붙이기:

하루 종일 걸었으니 학생들이 빨리들 곯아떨어질 것이라고 예상을 했으나 빗나갔습니다.

늦었으니 그만 얘기하고 자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친구들과 밖에 나와 있으니 잠이 안오기도 하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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