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농적 삶 6일차

작성자
kurory
작성일
2017-10-21 16:14
조회
324
장곡에서의 첫 아침

저는 5시 30분쯤 일어나 대충 씻고는 식재료를 들고 조리동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에서의 식사 준비는 제가 주로 합니다. 학생들은 농적 삶을 살러 온 만큼 농사와 노동에 집중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학생들은 여기서 호미를 잡고 땅을 파야지, 칼을 잡고 햄을 썰면 안 됩니다. 그건 온전히 저의 몫입니다. 정 안 되면 지원을 부르기는 하겠지만 일단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농사이며, 농적 삶입니다.

마을회관 문을 나서니 사방은 아직도 어두컴컴하고 머리 위로는 오리온 자리를 빛내고 있는 별들이 보였습니다. 조리동을 향하는 길에도 인기척이 없었는데 오늘 농장의 아침을 연 첫 번째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토스트기에 빵을 넣고, 물을 끓여 고구마를 삶고, 단감 껍질을 벗겨냅니다. 컵을 놓고 채비가 마무리될 때 즈음해서 아이들이 조리동으로 들어옵니다. 첫 날인만큼 첫 인상이 중요한지라, 늦지 않아야 한다고 약간 걱정했는데 모두 시간을 잘 맞춰 나왔습니다. 커피, 고구마, 감, 토스트, 딸기잼으로 배를 채우고는 농장 비닐하우스 쪽으로 향합니다. 그쯤 되니 이분, 저분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른 분들까지 모두 모여서 빙 둘러 서고 체조를 합니다. 아침 체조로 몸을 풀고 저희는 오늘 작업 장소인 행복 농장으로 향합니다. 안개가 자욱해서 보이지 않았는데 한 3분 정도 걸으니 행복 농장이 나옵니다. 행복 농장에는 허브 향이 그득합니다. 행복 농장 담당하시는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잠시 둘러본 저희는 화단 작업을 위해서 길을 나섰습니다.

화단 작업

젊은 협업 농장 뒷편, 넓다란 화단이 있습니다. 팜파스 그라스라는 식물이 멋들어지게 서 있는 곳인데 중요한 꽃들만 남기고 나머지 풀과 잡초는 모두 솎아내야 했습니다. 어떤 건 뽑으면 되고, 어떤 건 안 되는지 설명을 듣고는 호미며 작은 낫이며 들고서는 하나둘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안개는 아직도 멀리 보이고, 해도 큼지막하게 떠오르는 중이었습니다. 저희가 젊은 협업 농장에서 하는 첫 번째 작업이었습니다. 작업을 하다가 중간에 쉬는 시간이 왔습니다. 워낙 오전 작업을 하다가 중간에 '참'을 먹기도 하는데 저희는 그 준비까지는 안 했습니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는 것으로 대신한다 생각하고 이후 상황을 보려는 참이었습니다. 한 10분 쉬고 이제 다시 시작해보자 하는데, 저희를 부르십니다. 와서 간식을 같이 하자고. 학생들 얼굴에서는 어제 그 미소가 다시 번졌습니다. 저도 기쁜 마음으로 서로 둘러서 있는 식탁으로 건너갔습니다. 빵, 과일, 요구르트, 차, 잼 등등 여러 음식들이 있었고 저희도 둘러서서 (기준이 다른)조금씩 먹었습니다. 저희가 '여긴 원래 이런 곳인가 봐'라고 생각할까 염려가 되셨는지 담당 매니저 분께서는 '행사가 있어서 운이 좋은 것'이라고 한 번 환기를 시켜주셨습니다. 다 먹고 나니 또 힘이 났습니다.



땅을 긁으면서 모두들 감탄했던 '연장'



열일하는 학생들



복실이, 덩치에 안 맞게 너무 순합니다. 아무리 순해도 살짝 깨물면 피날 정도의 이빨을 갖고 있습니다.



준서



은기



경빈



맛에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빵에 발라 먹었던 잼들

또 다른 작업 그리고 생미 식당

점심 시간이 됐습니다. 학생들이 화단 작업을 하는 동안 저는 비닐 하우스에서 쌈채소를 땄습니다. 평소 상추 말고는 먹지를 않아서 저는 쌈채소 종류에 이런 게 또 있는지 몰랐습니다. '신홍쌈'이라는 게 있는데 배추와 청경채를 교배시켜 만들어낸 신품종입니다. 잎에 솜털 같은 가시들이 나 있는데 그 모양이 특이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또 다른 쌈채소로 '쌈추'라는 게 있었는데 배추와 양배추를 합친 신품종입니다. 농사라고 하면 파고, 묻고, 물 주고, 수확하는 것만 생각했지 이렇게 합치는 건 생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엄지 손가락 끝으로 잎들을 하나씩 따서 재배를 하는데 다들 저 멀리 가는 동안 저는 이 뒤에서 느릿느릿 갑니다. 이걸 따야 하나 싶은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길었고, 손에 익지를 않았으니 더 조심한 까닭입니다. 운 좋게도 풀무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일전에 뵌 적이 있던 박 완 선생님과 같이 온 학생들인데 토요일마다 농업 실습을 하러 나온다고 합니다. 풀무 학교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아둔 터라, 그곳을 다니는 학생들을 마주하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학생들의 대화를 듣다 보니 한 가지 이상했습니다. 서로 존대를 하는데, 분명 누나 동생이거나 또래일 텐데 싶은 생각에 학년을 물어보니 남학생은 1학년, 여학생은 2학년입니다. 궁금한 생각에 다시 물으니 학년끼리 모두 존대를 한다고 합니다. 정확히는 사적인 자리는 반말을 하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존대를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대화하는 걸 듣고 있자면 슬그머니 감탄을 하게 됩니다. 나이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존중이 느껴져서 입니다. 그 학생들은 그걸 느낄까요. 저는 그 대화를 들으면서 마음이 좋았습니다. 중간에 참을 한 번 먹고는 점심 식사를 하러 가게 됐습니다. 저희 학습 자료에도 나왔던 생미 식당입니다. 차를 5분 정도 타고 가니 도로 한 켠으로 식당이 나옵니다. 들어서서 보니 식판에 배식을 받아 식사를 하는 식인데 밥을 퍼 놓고는 반찬들을 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콩나물, 부침개, 오삼불고기, 동태찌개, 브로콜리, 메추리알과 곤약 조림, 상추, 김치(방금 막 담근!)까지 풍성한 식단이었는데 가격은 7,000원이었습니다. 여기에 리필도 됩니다. 오징어나 동태야 바다에서 나는 것이니 논외로 치더라도 콩나물, 상추, 김치에 쓰는 배추, 쌀 등은 지역에서 나는 것을 씁니다. 지역을 위한, 지역민을 위한 식당이기도 했지만 우리 모두를 위한 식당이기도 했습니다. 여기 와서는 오히려 더 잘 먹고 있습니다. 잘 먹고 일 더 잘 하고 열심히 하는 게 더 좋죠. 먹느라 바빠서 사진은 미뤘습니다.

쉼, 그리고 오후 작업

점심 식사 후에 1시간 정도 쉼을 가졌습니다. 저는 그 사이에 밀린 일지들을 모두 정리하고 학생들은 마을 회관으로 돌아가 쉬었습니다. 일지가 좀 밀려있어서 2시간 정도 정리한 것 같습니다. 그 사이에 학생들은 쉼이 끝나고 화단 정리를 마저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리동 옆에 벽돌을 쌓고 새로운 화단을 정리했습니다. 저는 제 정리가 마무리된 후에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해서 식재료를 가져다가 조리를 시작했습니다. 6~7인분은 처음이라 걱정 반 기대 반이었는데 끝까지 비운 걸 보니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김치 볶음도 했는데 신김치의 매운 맛은 가시질 않아서 상당히 매웠지만 볶음밥과 먹기에는 그만이었습니다.



화단 작업 중



화단 작업 중



오늘의 화단 작업 마무리 후 기념 촬영 중!



밥 다 볶았음

협업농장에서의 첫 번째 배움 | 더불어 사는 마을 이야기

 



강의 참여 전, 불 밝혀진 협업농장 오누이 강당 (여기서 오누이는 사이좋은 '오누이'가 아니라 지역 특산인 오디, 누에, 냉이를 뜻합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6시 55분 경 해서 모두 오누이 강당에 모였습니다. 오늘 '더불어 사는 마을 이야기' 강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앉아서 강당 책꽂이에  있는 책들을 펴들었습니다. 이곳 강당에도, 감사하게도 각양각색의 책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7시부터 시작이라는 강의가 시간이 되도록 아무도 안 나타나서 장소를 잘못 알았나 하는 노파심에 묻고 물어 알아보니 강의를 함께 듣는 성미산 학교 학생들의 도착 시간이 조금 늦어진 모양입니다. 7시 30분으로 시간이 변경이 됐는데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시간이 좀 늦어질 수는 있겠으나 읽던 책들을 계속 읽을 수가 있어서 잘 됐다 싶었습니다. 조금 있으니 성미산 학교 학생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저희도 펜을 잡고, 각자의 워크북을 펴들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윽고 정민철 선생님께서 들어오시고 강의가 시작됐습니다. 정확히는 강의가 아니라 이야기였습니다. 질문과 답변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였습니다. 여러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제가 요즘 새벽에 아침 식사를 준비하러 나오다 보니 별을 많이 봅니다. 하늘에 촘촘 그리고 총총 박힌 별들을 보자면 어디서부터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하늘 전체를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되새김질을 합니다. 제가 어제 정민철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느낌도 이렇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 정민철 선생님께 쌓여있던 경험과 이야기들이 길게 펼쳐지는데 여기서 이게 좋고 저게 좋다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쭉 들으면서 감탄하고 느끼고 이해할 따름이었습니다. 이런 중에 그래도 기억에 남는 몇 가지 대목을 아래 남겨봅니다.

첫 번째, 우리의 거주 지역과 생활권은 일치하는가? 마을 이름이나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정체성이 충분히 있는가?

예를 들어 같은 호매실동에 사는 사람이라 해도 한 사람은 서울로 출퇴근을 하고, 한 사람은 수원으로 출퇴근을 합니다. 장을 봐도 한 사람은 서수원으로 나가고, 또 다른 사람은 동수원으로 나갑니다. 호매실에 산다고 해서 반드시 동네 안에서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습니다. 행정구역으로는 '동네 사람'이지만 실상 생활을 보면 동네 사람이 아닌 것이죠. 마을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접점이 있어야 하는데 모두 따로 따로이니 만들어질래야 만들어질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같이 나온 이야기가 있는데 일본의 한 학자가 사람들이 무엇을 중심으로 해서 정체성을 갖는지 연구해 보니 일본은 마을 이름과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모이더랍니다. 이 학자가 한국에 와서 연구를 하다가 깜짝 놀랐는데, 한국에는 이 중심이 안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희미하고 불투명하다고 표현하면 맞을 것 같습니다. 과연 지역 생활권을 규명해주는 마을, 규명해주는 학교가 있을까요. 물론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요점은 저희 '칠보산 자유학교'가 지역 생활권을 규명해줄 수 있는가 입니다. 이름은 칠보산자유학교이고 이름만 보면 지역과 끈끈한 연결이 되어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 그런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일반 중고등학교들 같은 경우 거의 모두 동일한 연간 일정으로 움직일 겁니다. 5월에는 운동회를 하고 7월에는 방학을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농촌에 있는 학교를 예로 들자면 5월은 가장 바쁜 시기입니다. 농사의 흐름이 그러하니 그 일거리들을 두고 자식을 운동회에 보내고 참여하는 것이 참 버거운 일입니다. 지역 자체의 특성이 고려되지 않은 일정입니다. 이렇게 지역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는 '학교'일까요? 일전에 수원시청에서 저희 영화제에 찾아주신 분이 말씀하셨던 내용이 떠오릅니다. 지치고 힘든 시기에 생각나고 돌아올 수 있는, 그런 지역, 그런 마을일까요? 그런 학교일까요?

두 번째, 농촌과 도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농촌과 도시의 연결이 있었습니다. 명절 때 그나마 한 번쯤은 오가던 시골의 풍경과 농촌의 생활을 사람들은 알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그 연결이 많이 끊어졌습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농촌의 존재를 쉽게 망각합니다. 모든 것을 '소비'를 통해 쉽게 얻을 수 있는 공간에서 농촌은 그저 '식량 생산 기지'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지력에 의지해 살아가는 장소임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어느새 사람들은 서울(도시)과 지방(농촌)으로 획을 그어버립니다. 도시는 출세와 유행, 세련됨을 나타내고 지방은 뒤떨어지고 '촌'스러운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획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대학의 서열화입니다. 지금도 학생들은 교실에 콩나물 시루에 들어가 있는마냥 고개를 책상에 숙이고 출세와 유행에 뒤지지 않기 위해 펜대를 굴립니다. 물론 정말 학문에 대한 욕심으로 정진하는 학생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 의미없는 기준에 (자신도 모르게) 매달려 달립니다. 모의고사 등급이 하나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에 울고 웃다가 수능을 보고 대학을 갑니다. 지방대를 가면 망신이 되는 것이고 그래도 수도권 내로 가면 고개 들 만한 것이고 서연고로 대표되는 상위권 대학을 가면 어깨도 쭉 펼 만합니다. 대학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들의 머릿속에 극명하게 나눠져있는 '인 서울'과 '지방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나는 의사가 되겠다고 서울대 의대를 들어가려 공부하는데 누가 말리겠습니까. 그런데 농부가 되겠다고 지방에 있는 대학을 가려고 하면 말립니다. 의사는 사람을 고치고, 농부는 사람들이 연명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의사는 농부의 쌀을 먹고, 농부는 의사의 치료를 받습니다. 그런데 의사는 되고 농부는 안 됩니다. 도시는 좋고 지방은 안 좋습니다. 인 서울이면 가문의 자랑이며 지방대면 쉬쉬 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좋은 대학 들어가려고 피 터지게 공부합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 공무원, 대기업, 공기업 시험 준비합니다. '촌'스러워지면 안 되고 '소비'가 끊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며 그를 위해서는 안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농촌과 도시를 가르는 그 기준, 지방과 서울을 나누는 그 기준은 우리 자신도 모르게 우리 안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세 번째, 안정과 불안정입니다.

협업농장에는 안정이라는 게 없습니다. 없다고 할 수는 없는데 안정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농장에 많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들어오는데 어떤 때는 20명이 들어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10명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농사에 숙련된 전문가들이 오는 게 아닙니다. 당장 납품을 해야 하는 상추를 따야 하는데 호미나 한 번 잡아봤을까 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진행하는 스탭들이 죽어납니다. 하나씩 교육을 시키고, 옆에서 봐야 하고, 출고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명이 이제 대화도 하면서 상추도 따고 손에 좀 익었다 싶을 때 일정이 끝나고 또 새로운 10명이 들어옵니다. 또 다시 교육을 시킵니다. 협업농장은 교육의 기능도 합니다. '인큐베이터'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육의 기능은 약 30% 정도입니다. 나머지 70%는 생산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런데 이게 하다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오늘 당장 100상자를 수확해서 포장까지 끝내야 하는데 초보자들 모아놓고 재배를 하자니 속도는 안 나고, 교육은 시켜야 하고, 포장도 해야 하고 미치는 겁니다. 해결 방법은 간단합니다. 청년들 안 받고 딱 고정 스탭 몇 명이 손발 맞춰 움직이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안 합니다. 안정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안정은 정체를 뜻합니다. 안정이 되면 편해지고 안주하게 됩니다. 발전이 딱 멈춘 상태인 거죠. 정민철 선생님께서 예로 드신 건 분자의 움직임입니다. 전자가 8개면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지만 7개면 나머지 1개를 찾기 위해서 활성화됩니다. 활성화가 곧 불안정 상태입니다. 불안정이 곧 활성화입니다. 농장의 이런 상태에 대한 볼멘 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젊은 사람들 안 받고 고정 스탭들만 돌아가면서 일하면 숙련도도 훨씬 올라가고 안정됩니다. 하지만 이는 교육 기능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며 안정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설사 어느 순간 안정이 찾아오더라도 그걸 깹니다. 10명이 척척 움직이다가도 역할을 바꿔버리거나 구성원을 바꿔버립니다. 그러다 보면 또 불안정해지는 것이죠. 이러다 보면 사람들은 자극을 받고, 적응을 하게 되고,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애쓰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진행되는 것이 평민지역학교입니다. 서로 스승이 되기도, 제자가 되기도 하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서로 채워줍니다.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누군가 농장에 들어오면 중국어 강의가 열리는 것이고, 경영자가 들어오면 경영이론을 나누게 됩니다. 이런 공부를 하면서 젊은이들은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보는 눈이 달라지고, 눈에 들어오는 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간을 거치면서 꼭 농업이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맞는 길을 탐색해 나가게 됩니다. 이런 활성화를 위해서 농장은 안정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강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옮길 수 있으면 좋겠으나 제 기억력에 한계가 있는 터라 핵심적으로 떠오르는 내용을 중심으로 적었습니다. 여기에 제가 강의 들을 당시에 들었던 생각들과 저의 얼마 안 되는 인생 경험들이 섞이어 또 다르게 전달이 될까 우려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최대한 강의 내용에서 비껴나가지 않도록 애를 쓰며 적었습니다.

학생들에게도 좋은 시간이 됐습니다. 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별과 별 사이에 선을 잇고, 별자리를 그려보고, 관련된 이야기가 줄줄이 나오는 것처럼 갓골에서 협업 농장에 대해 공부를 한 내용과 밝맑 도서관에서 책을 통해 접한 내용들이 강의 내용 사이에서 씨줄날줄이 되어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학생들과 세미나 실에서 강의 갈무리를 한 내용이 있는데 제가 따로 정리를 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루를 마치며

오늘이 농적 삶 일정을 시작한 지 꼭 일주일째입니다. 배움과 배움의 연속입니다. 1학기 초, 사실 진로 수업을 담당하게 되면서 참 막연했습니다. 진로와 농적 삶을 연결을 시키려니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바가 아니나, 가슴으로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진로는 직업이라는 공식이 제 머릿속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걱정 반, 염려 반으로 1학기에 여기저기 공동체 탐방을 하고 2학기에 농적 삶을 기획해서 움직이려니 감이 안 잡혔습니다. 진로와 농적 삶 사이를 잇는 선이 희미했던 겁니다. 여차저차 준비를 하고 지내다 보니 그 선이 점점 선명해집니다. 이 선명해지는 선을 학생들도 느낄까요? 느끼는 건 학생들 몫이라 쳐도, 이 선명해지는 선을 보여주는 것은 저의 몫입니다. 남은 5일, 모두 함께 잘 배우고 일 열심히 하고 돌아가겠습니다.
전체 4

  • 2017-10-21 21:17
    선생님 밥도 볶으시고 너무 수고가 많으셔요 끝까지 건강하셔야해요^^

  • 2017-10-22 09:43
    아침농사가는 풍경은 마치 구 소련 키부츠에 일하러 가야하는 사람들 같더니만, 밝은 햇살이 내리는 낮이 되니 활짝 핀 표정이 농적 삶의 순환과정을 잘 보여주는듯 합니다~~

  • 2017-10-23 10:13
    협업농장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진로란 '나아갈 바'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 학생들이 도시에서 학교의 철학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살아있는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곳에서의 귀한 배움이 학생들에게도 교사들에게도 자극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감사해요!

  • 2017-10-23 12:14
    안정은 정체를 뜻하고, 불안정이 곧 활성화라는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네요.
    한편 생각해보면 보통 안정은 좋고 불안정은 뭔가 안좋고, 그래서 불안정 상태에서는 안정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그것이 활성화이지 싶은데요. 안정과 불안정 상태는 하나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이클이 있는 것이구요. 그런데 불안정 상태를 의도적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하며 깨어있으려고 하는 점이 특이해보입니다.

    급 협업농장에 대해 궁금해지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