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졸업여행(울릉도 여행) - 2

작성자
최껄껄
작성일
2021-10-26 15:45
조회
639
  1. 첫날- 숙소 구하기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속도로 위에서 유턴을 할 수 없는지라 일단은 강릉항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곳에는 여러 대의 관광버스가 있었고, 그 안에 많은 관광객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떤 분들은 눈을 감고 있기도 했고, 어떤 분들은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으며, 어떤 분들은 근심 어린 눈으로 서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버스 앞에서 담배를 태우는 분들도 보였다.

 

기사님이 이제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잠시 시간이 필요하니 회의를 좀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이 당황스러운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회의했다.

 

다음은 여행 중에 이재서 학생이 쓴 글이다. 이날 있었던 일을 소설로 적었다. 아래 글은 여행문집에도 실릴 예정이지만, 이날 상황을 아주 잘 표현해서 함께 읽어보면 좋겠다.

 

 

<산책을 하다 돌이 굴러 떨어져 길이 막혔다: 이재서>


 

산책을 하다 돌이 굴러 떨어져 길이 막혔다. 강릉 해안가였다. 깎아 지르는 절벽을 왼쪽에, 드넓은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가운데로 난 산책길이었다. 나무 데크로 계단과 평지가 반복되어 있는 형식이었다. 아래에서는 파도가 철썩철썩 쳐댔고 하늘에서는 바람이 휘잉휘잉, 바로 앞에서는 방금 무너진 절벽의 돌이 드르륵, 하고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내 뒤에는 같이 온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었다. 오늘은 내가 길잡이라 앞장서서 가고 있었는데, 바로 앞에 절벽과 산책로가 순식간에 굉음을 내며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그 후 한동안 우리 안에서는 정적이 감돌았다.

 

“뭐지?”

 

이윽고 태욱이가 말했다.

 

“와 씨이*.”

 

병희가 입을 헤 벌린 채 말했다.

 

“하,”

 

원배쌤이 허탈하고 어이없는 미소를 지었다. 태경이는 떨떠름하지만 별로 충격 받지는 않은 듯 왼손으로 턱을 문질러댔다. 연수는 아까 걸을 때부터 힘들어했던 탓인지, 그저 피곤한 얼굴로 바다를 쳐다봤다. 아진이는 평소 짓고 있던 잔잔한 웃음기가 싹 가신 표정으로 무너진 절벽을 두리번거렸고 치원이는 옆에서 “어떡하지, 돌아가야 하나.” 하고 중얼댔다. 맨 뒤에 있던 원배쌤이 앞으로 나오더니 말했다.

 

“자 여러분, 잠깐 얘기를 해봅시다. 그 전에 앉아서 좀 쉴 곳을 찾아야 할 거 같으니, 조금만 뒤로 돌아가도록 해요.”

 

원배쌤을 따라 우리는 모두 안전히 앉을 수 있는 곳까지 왔던 길을 돌아갔다. 조금 가자 앉을 수 있는 나무 탁자가 나와 거기에 빙 둘러앉았다.

 

”이제 모두 솔직한 마음으로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 얘기를 해봅시다. 우리가 원래 하기로 했던 일정에 차질이 생겼는데,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 숙소로 갈지 뭐 여러 가지 방안이 있을 것 같아요. 먼저 얘기해볼 사람 있나요?”

 

원배쌤이 묵직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느라 잠시 조용했다. 옆에서는 여전히 파도소리와 바람소리가 매섭게 들려왔다.

 

”저는,”

 

태경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모두의 시선이 턱을 만지고 있는 태경이에게로 꽂혔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기 보단 숙소에 가서 거기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원배쌤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네에. 다른 사람은?”

 

나는 고민하다가 “저도,”하고 운을 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숙소로 가서 다음 일정에 관해 생각해보거나 아예 지금 다른 산책길을 가 봐도 좋을 거 같아요. 일정에 차질이 조금 생긴다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건 이해가 잘 안 돼요.”

 

”근데 저는 집으로 가고 싶어요.”

 

태욱이가 말했다. 원배쌤이 “왜죠?” 하고 되물었다.

 

”산책 중에 거의 깔려 죽을 뻔 했는데, 다음 일정을 어떻게 계속 해요?”

 

태욱이가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길이 무너지는 바람에 불안한가요?”

 

원배쌤이 말했다. 순간 <비폭력 대화>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이 생각났다. 상대의 말을 되풀이하고, 상대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명확히 하기 위해 이해한 것을 다시 한 번 물어보기.

 

“다음 일정도 완전히 바뀔 텐데, 계속 여행을 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네에 알겠습니다. 다음에도 마음이 불편하면 불편합니다아, 하고 말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 의견도 들어볼게요.”

 

”저는 그냥 숙소로 가도 상관없고 다른 길을 찾아도 상관없어요.”

 

병희가 말했다.

 

”어쨌든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죠?”

 

“네.”

 

병희가 대답했다.

 

”저는, 으음, 역시 집으로 가는 것도 좋은 거 같아요.”

 

치원이가 말했다.

 

”왜죠?”

 

원배쌤이 되물었다.

 

”왜냐하면, 으음, 길도 무너졌고, 바람도 불고, 파도도 치고…….”

 

”치원이도 마음이 불안한가요?”

 

”그런 것도 물론 있죠, 네.”

 

”네에, 알겠습니다.”

 

원배쌤의 말을 끝으로 침묵이 찾아왔다. 절벽 뒤로 해가 넘어갔다. 어느새 머리 위로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가을 바닷바람이 꽤 쌀쌀해 몸이 살짝 떨렸다. 잠바를 껴입으며 팔로 몸을 감싸고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애들도 비슷한 상태였다.

 

”저는 어떻게 해도 좋아요.”

 

연수가 말을 꺼냈다. 목소리에서 제발 좀 쉬고 싶다는 뉘앙스가 팍팍 났다. 원배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한동안 침묵이 찾아왔다.

 

”저는,”

 

아진이가 드디어 입을 뗐다. 모두들 아진이를 쳐다봤다. 아진이가 눈을 살짝 벌리고 입을 달싹거리다가 말했다.

 

”계속 여행을 하고 싶어요.”

 

원배쌤은 고개를 끄덕이고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네에. 모두의 의견을 들어봤는데, 치원이와 태욱이는 이대로 계속 여행을 하는 게 불안하다고 해요. 앞으로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건 맞아요. 원래는 내일도 이 산책길을 걷기로 했었잖아요? 그래서 치원이와 태욱이를 위해 먼저 내일 계획을 세워보면 좋을 것 같아요. 치원이와 태욱이는 안전한 계획이 세워진다면 계속 여행을 해도 괜찮을까요?”

 

”네. 그럼 전 괜찮아요.”

 

치원이가 씩씩하게 말했다. 태욱이는 어물쩍거리다가 “네, 좋아요.” 하고 작게 말했다.

 

”그럼 한 번 계획을 세워봅시다.”

 

우리는 바람막이를 덥고 피곤과 추위와 씨름하며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각자 생각한 걸 나눴다. 엉성하긴 하지만 결국 계획이 세워졌다. 일단 숙소로 돌아가서 내일까지는 산책로가 다시 열리길 기다린다. 만약 안 열린다면 내일 모레까지도 기다린다. 그 동안은 주위에서 산책로가 열릴지 안 열릴지에 대해 물어본다.

 

우리는 다음날부터 산책로에 대해 검색을 하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고쳐질 거라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이틀 뒤, 산책로가 잘 열렸다. 보수공사가 아직 조금 덜 되긴 했지만 사람이 지나다닐 수는 있을 정도였다. 결국 우리는 첫날 못 갔던 산책로를 삼일 째가 돼서야 지나갈 수 있었다. 그래도 여행을 계속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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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내용으로 우리는 회의를 했고, 오늘은 일단 강릉역으로 가기로 했다. 추위와 비를 피할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먼저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를 하나씩 잡고 앉았다. 30분의 시간 동안 오늘 활동을 어떻게 할지 고민한 후에 다시 모여 회의하기로 했다.

 



 

일단 오늘 하루는 강릉에서 숙소를 찾기로 했다. 회의를 마치고 잠깐 쉬고 있는데, 울릉도 숙소 사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수요일에는 배가 뜰 것 같으니 날짜를 그때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아까 해운사에서 연락이 와서 배삯을 환불한 상태였다. 아이들과 다시 회의를 했고, 그럼 화요일까지 강릉에서 있고, 수요일에 들어가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취소한 배를 다시 예매했다. 그리고 오늘 묵을 숙소도 예약을 했다.

 



 

아이들의 입에서는 이럴 줄 알았으면 원래 예약했던 숙소를 취소하지 말걸, 이라는 말도 나왔으나, 이럴 줄 어느 누가 예상했었을까….

 



 

강릉역 안에 있는 설렁탕 집이 9시에 열었다. 따뜻한 식사를 하니 몸에 열기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첫날 일정이 시작되었다. 첫째 날 길잡이는 태경이다. 태경이가 선두에 나서고 길찾기 앱을 사용하여 우리를 숙소로 인도했다.

 



 

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여전히 아침이다.

길고 긴 하루는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의 여행도 이미 시작되었는데, 울릉도는 하늘 위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전체 2

  • 2021-10-29 16:24

    천천히 아껴서 봐야겠어요^^


  • 2021-11-25 11:37

    오!!! 재서의 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