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광주518여행 3일차

작성자
김 학민
작성일
2022-05-19 08:30
조회
548
518일의 시작

어제 준비해둔 저녁식사는 오늘 아침식사가 됐습니다. 밥, 카레, 밑반찬으로 식사를 마치고 어제 다 하지 못한 나눔을 했습니다.

 

주남마을로

버스를 타고 주남마을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1학년은 작업 차량에 길이 막혀 위령비까지 가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습니다. 올해 1학년은 꼭 가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니 주남마을 입구입니다. 입구에는 사적기념비가 서 있고, 그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보여주는 게시물도 있습니다.



주남마을 입구에서

 

 

위령비

당시 버스 총격 후 부상을 입고, 마을 야산으로 끌려가 희생되신 두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나 마을 주민이 발견하여 수습해드렸고 이후 그 자리에 두 분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위령비가 세워집니다. 버스 총격으로 돌아가신 분이 그 두 분뿐이시겠느냐마는, 이 위령비가 있어서 어쩌면 아직도 편히 잠들지 못하신 분들도 함께 떠올리게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위령비 앞에서 학생들과 잠시 예를 갖추어 묵념으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묵념이 끝난 후 주제를 알려주었습니다. “여기 두 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무엇이 있을까?”



두 젊은 넋을 위로하는 위령비



어떤 말씀을 드릴까 고민 중

 

광주공원으로

주남마을을 떠나 광주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워낙 일정에는 없었지만, 도시락을 먹을 만한 장소를 물색하다 보니 그곳이 적격이었습니다. 마침 그곳이 5·18 사적지 중 한 곳이기도 해서 고민할 것도 없었습니다.

광주공원에 도착하여 오르막길을 오르니 맨 처음 보인 것은 4·19 당시 희생된 광주 학생들을 기리는 기념물이 있습니다. 4·19 때도 시민들을 향한 발포가 있었죠. 돌아가신 학생 분들의 사인을 보니 모두 총상입니다. 탐욕이 총칼이 되어 일반 시민들을 향하는 면에서 4·19와 5·18은 닮았습니다.

더 위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려고 보니 계단 중간에 쓰여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보니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계단이었고, 꼭대기는 일본 신사가 있었던 곳입니다. 일제 식민의 잔재로, 살아있는 증거로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도시락을 먹고 쉬었습니다. 오후에 죽음의 행진 코스를 걷는 일정이 시작됩니다.



일제 식민의 잔재, 신사로 향했던 계단

 

죽음의 행진, 그 길을 따라서

1980년 5월 26일 새벽. 탱크가 들어온다는 소식. 어떻게 할까. 가서 몸으로라도 막자. 도청을 나선 사람들. 걷고 또 걷습니다. 점점 늘어나는 행렬. 탱크가 앞에 보입니다. 지나가려면 우리를 밟고 지나가라며 눕고, 눕고, 눕습니다. 탱크는 방향을 뒤로 돌립니다. 27일 새벽 최후의 항전이 있기 전 작은 승리였습니다.

2022년 5월 18일 낮. 구 전남도청 입구에 섰습니다. 지금부터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는 침묵입니다. 대화도 장난도 없이 걷습니다. 당시 그 길을 걸었던 분들의 심정을 떠올려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구 전남도청, 유동 사거리를 거쳐 양동시장으로. 잠시 쉬었다가 돌고개를 지나 농성공원으로 향합니다. 거의 1시간가량을 침묵을 지키면서 볕 아래를 걷는 게 조금은 힘들었을 겁니다. 농성공원에 도착하니 사적기념비가 보입니다.



과거 그 경로를 따라서 걷는 학생들



양동시장은 시민군에게 김밥, 주먹밥, 음료 등을 나누었던 곳입니다.

 



잠시 쉬는 학생들

 



목적지에 도착 후 '행진'에 대해 생각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의 생각들

 

주남마을에서 돌아가신 두 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

- 꼭 사과를 받게 될 것입니다. 누가 발포 명령을 내렸는지 밝혀질 것입니다.

- 기억하겠습니다. 5·18때 희생되신 분들을. 위에 올라가서 너무 짧게 끝낸 삶을 잊고 웃으며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 기억하겠습니다. 여러분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기억 뿐이라 죄송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다면 마다 않고 하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그때 많이 무서우셨죠? 그래도 좋은 곳에 가셨기를 빕니다.

- 그냥 평범한 시민이었을 뿐인데 그렇게 억울하게 돌아가셔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잘 묻히고 비석도 세워드렸으니, 공기 좋은 곳에서 편하게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일단은 추모를 먼저 드릴게요. 두 분께 미안합니다. 늦게 알게 된 것에 대해서. 언젠가 꼭 진실이 나옵니다.

- 하늘나라에서는 건강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

 

주제: 행진

- 행진은 다양한 사람들의 같은 뜻을 모으는 것이다. 또 다양한 민중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기도 하다.

- 저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다리가 아프고 힘들다 보니까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다리만 안 아팠으면 가고 싶어 할 것 같기는 한데. 어쨌든 지금은 가고 싶지 않다. 그래도 기회가 있다면, 기회가 많지 않으니까 한 번쯤은 다시 행진을 할 것 같다. 참여를 해보니 뭔가 대단한 일을 한 듯한, 뿌듯한 느낌이 있다. 그리고 5·18 같은 역사에 대해 나도 무언가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고되다. '행진'하면 생각나는 말. 어떤 일 때문에 하는 행진이든 간에 행진은 힘들 것이다. 체력도 힘든 이유가 되겠지만, 행진을 하게 만든 상황이 더 고되게 만들 것이다.

굳건. 행진하는 이들의 마음. 행진하는 분들은 모두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루고 싶은 게 있을 것이다. 때문에 행진하는 모든 분들은 굳건한 마음으로 걸을 것이다.

- 저는 행진은 의지라고 생각한다. 행진을 하면 모두가 힘든데 그럼에도 힘들게 행진을 하여 무언가를 이루어내려는 의지라고 생각한다.

- 행진을 했다. 그 당시에 어떤 의미로 행진을 했는지 생각하면서 걸었다. 힘들었다. 5·18 때도 힘들었을 텐데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행진을 했던 사람들이 멋있고 자랑스럽다고 한 번 더 생각했다.

- 오늘 어제 행진을 했다. 어제는 518을 위한 행진이었고 오늘은 죽음의 행진이었다. 죽음의 행진은 계엄군의 탱크를 막기 위한 행진이다. 이 죽음의 행진은 1시간 동안의 행진이었다. 과연 이 행진 때 광주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 오늘 죽음의 행진을 직접 해보면서 행진이 힘들기는 하지만 슬프기도 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탱크를 막는 것이 군인들을 막는 것인데 어쩌면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는 행진이었기에 슬펐을 것 같다.

 

죽음의 행진 때 무슨 생각을 했나요?

- 힘든데 사람들이 이 힘듦을 참고 탱크를 막기 위해 가서 행진을 했다는 생각이 드니까, 힘든 느낌이 좋지가 않았다. 나도 그 느낌으로 걸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 힘든데 그때 실제로 행진하셨던 분들은 더 힘들었을 텐데도 그렇게 끝까지 가서 탱크를 막아냈던 것이 떠오르면서 (그 분들이)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 당시 모습이) 상상이 잘 안 됐다. 그래서 어제 공연에서 봤던 노래들을 생각하면서 걸었다.

- 저는 처음에 출발할 때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생각하면서 갔다. 그리고 가면서 5·18 때 계셨던 분들이 자랑스럽고 멋지다고 생각하면서 갔다.

- 전남도청에서 출발할 때는 그 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갔을지 생각하면서 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길들이 시내의 느낌이어서 생각이 안 나서 제가 좋아하는 노래들 생각하면서 갔다.

- 가면서 처음에는 이곳으로 갔구나 하면서 살짝 신기했고 중간에 간간히 동생은 뭐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쯤 집에 가서 쉬고 있을 동생이 살짝 부럽기도 했다. 마지막은 가면서 그 분들이 힘은 물론 들었을 텐데, 어떤 생각을 하면서 걸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마음속에서는 침묵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시작을 했다. 그리고 중반부에는 집에 가면 뭐할까 생각을 하고, 떡갈비 언제 먹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음료수를 사주실까 생각을 했다.

 

역사여행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배우는 시간인 것 같다.

- 여기가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더 자세히 공부를 할수록 점점 마음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 역사여행을 와서 많이 알고 많은 것을 듣고 큰 느낌이 기본적으로 든다. 이번에 시위 재연이나 죽음의 행진 같은 코스를 경험하면서 좀 더 감정이 고조되는 것 같았다.

- 여기 직접 그때 그 일이 있었던 장소로 왔는데, 그래서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내 가족과 친구들을 대입하면서 생각하는 게 학교에서 한 것보다 훨씬 잘 됐다. 그래서 좀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 학교에서 되게 많이 배우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더 배우고 가는 것 같다.

- 뭔가 이 역사가 여기까지가 끝인 줄 알았는데 더 많은 사건들이 있어서 충격적이었다. 한편으로는 슬펐다.

- 역사여행이 뭔가 힘든 건 잘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힘든 걸 좀 하는 편이고 그렇게 놀 수 있는 게 아니고 뭔가 역사를 배우는 그런 여행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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