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학년 2학기 돌아보기여행 16일차(마지막 날)

작성자
김 학민
작성일
2023-10-22 23:13
조회
190
2023년 10월 19일 목요일



이동 구간: 숙소(아폴로 게스트하우스) - 안양천을 따라서 - 의왕 - 호매실 - 학교까지

거리: 약 40km

선두: 박은강

특이사항:

1) 드디어 마지막 코스!

2) 중간에 길 찾기가 복잡함



돌아보기여행의 마지막 아침.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들을 합니다.

준비를 어느 정도 끝내고 밖을 나가봤는데, 이럴 수가.

내내 오지 않을 거라 믿었던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가랑비나 부슬비 정도가 아닌, 굵은 빗줄기가 하늘에서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12시나 1시 도착을 목표를 하기에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비를 맞으면서 달리면 속도도 당연히 느려질 거고요.



오는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자전거 점검 중

 



가방을 짐받이에 묶습니다.

 

자전거는 모두 꺼냈습니다.

간식도 모두 나눴습니다.

비 맞으면서 달릴 채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길은 비도 함께 합니다.

7시 50분. 안양천을 향해 출발합니다.

안양천에 도착해서 남쪽으로 향합니다.



계단으로 자전거를 내리는 중

 

빗방울은 여전히 강합니다. 달리는 와중에 얼굴에는 계속 비가 들이칩니다.

운동화는 진작에 젖었고, 바퀴는 물웅덩이를 가릅니다.

비 때문에 인적은 드물었습니다.

간간히 우산을 쓰고 오가는 몇 사람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비를 맞으면서 수원으로

 

다행이라고 해도 될지, 그래서 자전거로 달리는 좀 더 수월했습니다.

도중에 쉬는 동안 마주친 한 아주머니는 아이고 어쩌나,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수원으로 가는 중이라고 동문서답을 합니다.

비를 맞고 달리는 우리 모습이 안타까우셨던 모양입니다.



비를 피해 잠시 쉬면서

 

 

은강이가 선두로 달리고 있었는데, 중반쯤 도착했을 때 달팽이 선생님께서 선두를 잡기로 하셨습니다.

이 길을 달려본 경험이 있으셨고, 무엇보다 길이 정말 복잡했습니다.

외길로 연결되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다리를 건너고, 계단을 오르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언덕을 오르고... 이런 길들이 이어지다 보니 학생 중 한 명이 선두를 잡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안전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고요.

오르락내리락, 오락가락, 왔다 갔다를 반복합니다.



험난한 경로

 

길을 묻고, 지도를 찾고, 헷갈려 하고.... 어느덧 의왕역 앞에 도착합니다.

의왕역을 지나면 바로 왕송호수입니다.

여기서부터 또 40~50분을 가야 하지만, 저희에게는 집 앞마당이나 마찬가지인 곳입니다.



의왕역을 향해서

 



이제 호수까지 남은 건 5분

 

부산에서부터 인천을 찍고, 이 곳까지 자전거만 타고 오는 일정을 소화해냈다니.

그것도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사고도 없이.

왕송호수를 지나면서부터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습니다.

비는 참 적절하게 잘 내린 것 같습니다.

솜처럼 들뜬 마음으로 자전거를 밟아 달리다 보면 자전거가 들떠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내린 비는 물 먹은 솜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아 바닥에 딱 붙어서 가라는 신호였던 것 같습니다.

왕송호수에서 잠깐 한숨을 돌린 후, 황구지천 옆 비포장길을 지나서, 수변공원을 지나서 학교를 향합니다.



비포장이지만 반가운 황구지천 옆 길

 

비 오는 날 한 무리를 지어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요.

보통은 무심히 지나갔을 겁니다.

부산에서부터 왔다고 이마에 써 붙이고 올 걸 그랬나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횡단보도를 건너서 학술림 옆 길을 달리기 시작합니다.

사거리에서 우회전.

 

앞에는 맞이를 나오신 어머님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학생들이 도착하는 영상을 사전에 부탁 드렸었는데, 멀리서부터 촬영을 해주고 계셨습니다.

 

저도 뒤에서 촬영을 하면서 따라갔습니다.

마지막 도착하는 순간은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학교 앞 길목으로 들어서는 중

 

 

앞으로 계속 쭉.

학교 앞에 도착해서야 자전거에서 내립니다.

자전거로 달리는 여정은 이제 끝났습니다.

(다행히 제 무릎은 아직 안 끝났습니다.)

 

학생들과 달팽이 선생님 그리고 저는 둥글게 모였습니다.

학생 하나 하나 이름을 부르면서 수고했다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저는 괜히 마음이 울컥해졌습니다.

이걸 해냈다니. 모든 학생들이 이렇게 잘 해냈다니.

대견함과 뿌듯함, 감동과 같은 감정들이 꽉 차올라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학생들에게는 비밀로 했는데, 도착 후 점심으로 치킨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알리면 치킨 생각만 하면서 달릴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들께서 준비를 해주셨습니다.

교실로 들어가서 치킨으로 배를 채우고, 따뜻한 라면 국물로 온기를 채웠습니다.

비를 맞은 덕에 그 음식들이 더 따뜻했습니다. 맞이해주시는 마음도요.



너무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정말 긴 여행이었습니다.

이렇게 꽉 채워 보낸 15박 16일이 아이들에게는,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남게 될까요?

많지는 않더라도 여러 여행을 다녀보니,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여행은 분명히 남는 장사라는 것입니다.

 

힘겹게 고개를 넘었던 순간들

시원하게 내리막길을 달리던 순간들

밤 늦도록 친구들과 떠들던 순간들

그러다가 한 마디 들었던 순간들

맨 밥도 맛있다고 한 솥을 비웠던 순간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자전거길을 계속 달리던 순간들

 

시원하게 마시던 콜라 한 잔

바퀴 밑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가던 뱀 한 마리

길을 잘못 들어 당황스러웠던 마음

간식을 나눠 먹던 모습들

베개 싸움을 하던 모습들

그러다가 또 한 마디 들었던 모습들

비에 젖어 내달리던 자전거

 

1년 중에 16일 뿐인데, 남아 있는 기억들은 무수합니다.

 

6명의 학생들.

고생 많았습니다. 여러분이 해냈습니다.

 

달팽이 선생님.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덕분에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내 무릎과 두 다리.

끝까지 버텨줘서 고맙다.

 

이 여행 일기를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덧붙이기:

마지막 날 아침 마지막 단상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키워드로 무엇을 줄까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던져준 마지막 단상 주제는 '성취'였습니다.

한 가지 조건.

'A+B=성취'라는 공식에서 A와 B에 무엇이 들어갈 것 같은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답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답변은 저에게 있지요. 학생들은 어떤 답변을 했을까요?

 

문집에 실을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전체 3

  • 2023-10-25 19:47

    한명한명의 A,B가 궁금해지는군요~선생님도 애 많이 쓰셨습니다. 무릎에 박수를~!!^^


  • 2023-10-26 09:47

    너무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이들 들어오는 모습에 저도 울컥했습니다.
    너무 감동적이고 대견스럽더라구요.
    아이들이 이렇게 한걸음 더 훌쩍 자라는것 같아 선생님들께 더욱 감사드립니다.


  • 2023-10-26 10:42

    두분 선생님과 아이들의 여행기를 몰아보면서 코끝이 찡해오네요^^
    마지막 날 어마어마한 비를 보면서 걱정을 하면서도, 여행이 이런 맛도 있어야지~~ 하는 못된 학부모였습니다.^^*
    친구 집에서 하룻밤만 자도 신나고 재미났는데, 6명이 긴 시간 동안 함께 고생도 하고 갈등도 겪고 희열도 맛보고..
    아이들이 지금 당장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먼 훗날 이런 기억들이 돌아보기 여행의 이름처럼 한 번쯤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주어지는 단상의 주제들도 지금은 소화할 수 없을지라도 어느 때에는 기억에 떠오르겠지요^^
    너무 많이 준비하면 계획대로 굴러 갈텐데 적당한 준비와 열린 결정들로 아이들이 함께 고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안전의 문제가 아니라면 아이들이 이런 갈등과 당황스러움을 겪는 것도 여행의 자연스러움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너무도 애써주신 달팽이 선생님,학민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이렇게 멋진 여행과 경험들로 쑥쑥커서 고등과정의 멋진 청년들이 되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