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소식 전해드려요.

작성자
김 학민
작성일
2023-04-13 23:24
조회
535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내면 좋을까 조금 고민이 됩니다.

2023년 4월 13일, 학교에서 함께 키운 수탉인 루핑루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오늘 아침, 수탉이 이상하다는 말을 듣고서는 뒷마당으로 향했습니다.

정말로 이상했습니다. 붉은 볏은 생기를 잃었고, 다리는 힘이 없었으며, 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한 학생이 안아다가 뒷마당에 내려놓았는데 일어나려다가 기우뚱 쓰러지기를 몇 차례.

쓰러지고 또 쓰러지다가 뒷마당 한켠으로 가더니 옆으로 쓰러져버렸습니다.

고개를 들려고 애쓰고 또 애쓰고... 눈을 뜨려고 애쓰고 또 애쓰고... 어느 순간 고개를 떨군 채로 눈꺼풀도 감겼습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죽음이었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의 이별이었습니다.

저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서 분양을 받아왔던 산안마을에 전화를 해보다가 안 받길래 자작나무 선생님께 연락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2021년 4월 22일, 화성시에 있는 산안마을에서 병아리 네 마리를 분양 받아 왔습니다.

그 당시 1학년이었던 올해 3학년 학생들은 교실 한쪽에 큰 고무통을 놓고는 병아리 네 마리를 애지중지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집에서 쓰던 CCTV 카메라를 연결해서 밤 중에 잘들 있는지 한 번씩 들여다 보기도 했습니다.

병아리들이 자라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걸 아이들이 잡으러 다니던 얘기도 떠오릅니다.

가랑비가 내리던 날 있는 재료, 없는 재료 끌어모아서 초승달 선생님과 학생들이 닭장을 완성했던 순간.

레몬청을 만들어 판 돈을 모아서 새로운 닭장을 구입하고, 부모님들을 모시고 닭장 집들이를 하던 날.

초승달 선생님이 아픈 닭을 데리고 동물병원을 찾으러 다니던 날.

이룸이 아버님께서 만들어주신 큼지막한 닭장이 완성되던 순간의 뿌듯함과 감사함.

암탉 날개쪽 깃털이 다 빠져서 염려하던 모습들.

학생들이 등교하기 시작하면 뒷마당에서 닭들이 함께 여기저기 다니던 모습들.

남의 밭에 들어간 걸 나오게 하느라 고생했던 기억들.

겨울방학에 며칠 사료며 물이며 챙겨주는 걸 깜박해서 조마조마하게 닭장으로 향하던 발걸음과 안도감.

무슨 강아지마냥 닭들을 품에 안고 쓰다듬던 아이들의 모습.

작년에 먼저 무지개 다리를 건넜던 밤톨이.

 

그리고 오늘, 루핑루이가 마지막 숨을 내뱉었습니다.

그 순간 학생들이 옆에 같이 있었던 건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을까요.

학생들은, 아이들은 땅을 파고, 관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아이들 눈은 벌갰고, 사방은 고요했습니다.

 

점심식사가 끝날 무렵, 조촐한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고맙게도 많은 학생들이 갑작스러운 자리임에도 자리를 같이 지켜주었습니다.

나무 조각들을 모아서 짠 관 바닥에는 누군가 개나리꽃을 깔아두었고, 그 위로는 루핑루이가 잠들어 있었습니다.

함께 묵념을 한 후 관을 덮고서는 미리 파둔 자리에 넣었습니다.

흙이 삽을 거쳐 옮겨지고, 덮고 또 덮고.... 곧이어 작은 무덤이 생겼습니다.

 

오늘 묻은 건 한 마리의 닭이 아닙니다.

병아리 때부터 키우던 그 순간들, 키우면서 웃던 순간들, 다쳐서 염려하던 순간들, 귀찮아하던 순간들,

닭을 끌어안고 쓰다듬던 그 손길들, 닭을 사이에 두고 서로 친해진 얼굴들.

루핑루이는 이 모든 것들을 함께 품고 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미안함도 있습니다.

닭이 아픈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좀 더 적극적으로 뭔가 방법을 같이 생각해봤어야 하는데.

사람이 감기 걸렸다가 낫듯이 지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 얼마 이따가 항생제를 사줘 봐야겠네...라는 생각.

차에 태워 동물병원을 가봐야 하지 않을까 물었던 아이들.

어느 동물병원에서 닭을 받아주려나 하는 생각에 주저했던 순간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지요.

슬픔이 차올라 있는 아이들이 있다면 반만 같이 나눠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뒷마당의 허전함은, 새로운 치아가 돋아나는 것처럼 또 채워지겠지만 조금은 천천히 채워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루핑루이가 많이 서운해할 것 같아서요.

 



 
전체 2

  • 2023-04-14 07:29

    에고.. 마당에서 했던 모든 행사에서 함께 했던, 에너지 넘치고, 한 성격했던 루핑이가 갔군요 ㅠ
    특히나 정을 주며 돌보았던 몇몇 아이들 얼굴이 떠올라 안타깝습니다.


  • 2023-04-14 10:43

    저를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한 루핑루이... 그 힘찬 모습을 이제 다시 볼 수 없게 되었군요.. 친구들이 슬픔을 잘 끌어안고 나아가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