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독서 프로젝트 돌아보기

작성자
김 학민
작성일
2023-03-26 22:09
조회
520
매번 속는 것 같습니다.

속는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속은 것 같습니다.

분명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교실에서도 자연스럽게 난로를 틀었습니다.

한 달이 긴 시간은 아닌 것 같은데 그 사이에 계절이 바뀌어버렸습니다.

계절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올 준비를 몰래 하면서 슬금슬금 바꿔 왔는데 이제야 눈치를 챘으니 속은 기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2월 말 독서 프로젝트 수업을 정리하다 보니 갑작스레 지나간 겨울을 떠올랐습니다.

신입생들은 한창 입학식 준비로 바빠지기 시작하는 그 무렵, 2학년부터 5학년까지는 독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독서프로젝트 수업은 매해 초 진행이 됩니다. 한 해의 독서를 준비하는 과정이자 서로가 읽은 책에 대해서도 나누는 기회죠.

첫 번째 시간에 학생들은 5개 모둠으로 모여서  책을 주제로 한 나라를 만들어 봤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다양한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책 나무,  책 모양 건물, 책 텐트 그림도 보입니다. 어떤 곳은 책 먹는 괴물을 종이로 접어서 가운데 배치했습니다. 또 어떤 모둠은 그림마다 책 제목을 넣어뒀는데 태양 10개를 그리고 곱하기 100이라고 써놓은 게 무엇인지 물어보니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라고 합니다. 나무에 새가 앉아 있고 뒤에 칼을 든 사람이 있길래 물어보니 <앵무새 죽이기>라고 답했고, 병원 같은 건물 위에 얼굴 그림이 있길래 물으니 <가면 병동>이라고 답을 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기발했습니다.



두 번째 시간에는 자신이 작년에 읽었던 책 중에서 기억에 남는 책을 두 권 골라서 스스로 책 표지를 꾸며봤습니다. 표지를 꾸미고, 내용을 떠올려 보고, 그 책을 읽으면서 나의 무엇이 채워졌는지 생각해보는 시간. 그렇게 만들고 소개하는 과정에서 각 학생들은 자신들이 읽고 싶은 책을 생각해 봅니다.

부모님들께서 작년에 읽으신 책이 무엇인지 제목 알아오기가 과제로 나갔습니다. 단순한 과제인 것 같지만 사실 의도가 있었습니다. 저희는 학교와 가정이 학생들을 함께 키워나갑니다. 아마 학생들이 나이를 먹어갈수록 부모님과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는 적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책 내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책 제목 정도만 묻고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어떤 연결점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가 숨어있었습니다. 그저 책 제목만 알게 되더라도 이후 어떤 책을 만날 기회가 왔을 때 '아... 이 제목 기억나는데...'라고 펼쳐볼 생각을 한 번이라도 더 하게 되지 않을까요? 학생들이 제출한 책 제목들은 둘째 날 첫 시간에 같이 나누었습니다.

둘째 날은 자신이 올해 읽을 책을 결정하는 날이었습니다. 첫째 날 다른 학생들이 추천해 준 책과 부모님이 읽으신 책 중에서 골라도 되고 평소 생각하던 책을 목록에 넣어도 좋습니다. 학생들이 써서 제출한 책을 정리하여 목록으로 만들었지요.



마지막 활동으로는 학생들이 작은 종이 조각들을 책 표지 모양으로 꾸몄습니다. 1인당 다섯 개씩 꾸몄는데, 자신이 올해 읽을 다섯 권의 책을 뜻합니다. 책을 하나 다 읽으면 숲 교실 앞에 붙여둔 독서 현황판에 붙이게 됩니다. 한 학기가 지나면 얼마나 채워져 있을까요? 아직까지는 두 장이 붙어 있습니다. (어쩌면 잊어버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서 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보니 책은 통로이자 끈인 것 같습니다.

다른 공간, 다른 시간으로 갈 수 있기에 통로이고, 다른 사람과 생각이 연결될 수 있기에 끈이 됩니다.

학생들이 책을 계단 삼아서 하나씩 올라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책 위로 올라가서 보는 세상은 또 다를 테니까요.
전체 4

  • 2023-03-27 18:10

    폴블룸의 "공감의 배신"이 리스트에 있네요.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인데 이책을 선택한 학생이 있네요. 책을 읽고 공감에 대해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책의 추천서 만큼 내용이 좋지 않고 공감 연구자 배런 코언을 인용한 부분도 있지만 배런코언이 주장하는 근본적인 이론은 빠져 있는 책이라 청소년이 읽기에는 좋지 않은 책이라 봅니다. 이책은 사회를 보는 근본적인 시각을 왜곡시킬 수 있습니다. 혹시 이 책을 읽은 학생이 원한다면 제가 추가적인 보충을 해 줄까합니다.


  • 2023-03-29 15:23

    책 목록이 누리집에 올라오니 친구들이 추천한 책 찾아서 읽을 수 있어 좋네요. 통로가 되어 서로 책 내용과 생각을 공유하고 책의 즐거움을 점점 알아가고 생각을 넓혀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 2023-03-30 15:41

    조금의 시간이 있어도 책을 손에 잡기는 어렵네요. 저도한번 벽돌깨기하는 마음으로 읽어보렵니다.^^
    나이먹어서도 책을 계단 삼아 올라간 세상은 다르겠지요?? 하루이야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3-05-24 13:00

    왜 <죽음> 을 읽고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누리집을 보지 않은 것을 반성하며..
    올려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