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학교에서는 연초에 독서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책과 독서를 주제로 이틀 동안 이루어지는 프로젝트 수업입니다.

목적은 책과 좀 더 친해지도록, 독서와 좀 더 친해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항상 1학기 개학 직후에 진행하기 때문에 1학년은 독서 프로젝트 대신 입학식 준비를 합니다.)

작년에는 학생들의 독서 현황을 자체적으로, 수시로 파악할 수 있도록 그래프를 만들어보려 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각 학생이 책을 완독할 때마다 그래프판에 종이를 하나씩 붙이는 방식을 설계했는데, 모두가 챙겨서 하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책을 읽는다 하더라도 학생들 스스로 챙기거나 누군가가 계속 챙겨줘야 진행이 가능했습니다.

결국 그래프를 통한 독서 상황 점검 및 분위기 조성 시도는 실패로 끝이 났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올해는 새로운 접근,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습니다.

우리 학교만의, 우리 학생들만의 추천 도서 리스트를 만들어보자.

이렇게 도서 리스트를 만들어두면, 그리고 이 리스트가 매 년 한 권씩 쌓인다면 잘 쓰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진행했습니다.

 

첫째 날|

학생들은 각자 읽었던 책을 두 권씩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책들 중 한 권을 서로에게 말로 소개해주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무조건 좋다고 추천해보는 것.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추천해보는 것.

각자가 추천하는 사람인 동시에 제안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책'을 인물로 형상화해서 그려보기도 하였고, 줄거리를 10글자로 요약하기도 해보았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다른 접근들을 해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둘째 날|

둘째 날은 도서 목록의 이름을 공모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도서 목록을 책자로 엮는다면 어떤 이름이 나을까?

각 학년별로 3~4개씩 제안을 했습니다. 아래는 그 이름들입니다.

(아래 이름마다 (5번을 제외하고) 그 뜻이 있습니다. 떠오르는 것까지만 일단 씁니다. 뜻이 확인되는 것은 추가하겠습니다.)

1. 우가우가
2. 비엔나: 비오는 날엔 나와 함께 책을
3. 소시지
4. 유명
5. 학민샘이 좋아
6. 평학
7. 위산
8. 소나무
9. 출소
10. 깨작깨작: 깨어있는 자작나무 깨어있는 자작나무
11. 거북목
12. 독수리
13. 까나리: 까도 까도 나오는 (도서) 리스트

 

(**5번은 투표 후보에서 제외시켰습니다. 학생들에게 잘 생각해 보라고 했죠. 이후 먼 훗날 도서목록을 찾을 때 "야, <학민샘이 좋아> 좀 줘 봐.", "<학민샘이 좋아> 2권 어디 있어?"라는 대화가 오고 가는 게 괜찮겠느냐고.)

 

위 목록 중에서 투표를 통해 13번 까나리가 도서목록의 이름으로 낙점이 됐습니다. (6표 득표)

 

이름을 정한 후에 학생들에게 1)열쇠, 2)문을 그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냥 열쇠와 문이 아닙니다. 문은 독서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며, 그 문을 열기 위한 열쇠입니다.

독서를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할 수도 있고, 호기심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독서를 위한 조건을 열쇠의 모습으로 형상화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각하는, 독서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의 모습도 그림으로 나타내어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여기에 그림들을 올리지는 않지만, 정말 각자의 개성이 담긴 열쇠와 문들이 (말 그대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독서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이렇게 다양하다니.

정말 펼쳐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 시간에는 독서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을 때 펼쳐지는 풍경을 그림이나 글로 묘사해 달라고 했습니다.

문이 다양한 만큼 각자가 그린 문 안 쪽 세계의 모습도 다양했습니다.

학생들이 채운 내용들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아, 이거 정말로, 최소한 PDF 파일이 되더라도, 일단은 엮어야겠구나'라고.

그냥 이대로 두기에는 너무 아까웠습니다.

도서목록 <까나리> 1권이 나오면 소식이 또 들으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번 독서프로젝트는 독서라는 주제를 통해서 학생들의 다양한 생각과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