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518여행 1~2일차

작성자
김 학민
작성일
2021-06-11 09:47
조회
717

“이런 열사들이 있었구나 하면서 열사님들을 보면서 세상에 모르는 열사가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5월 17일 월요일



(전남대 정문 앞 기념비 앞에서)

 

학생들이 열중합니다.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서. 41년 전 계엄군과 대학생들이 마주했던.

그때의 모습과는 다르지만 그 자리였다는 것은 알 수 있는 그곳에서요.

 

 

 

(전남대 교정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노랫말을 읽어보고 있다.)

학생들과 함께 전남대 교정을 돌아봅니다. 박관현, 윤상원 열사의 이름을 마주합니다. 처음 보는 이름이었겠지만 점점 커질 이름입니다.

 

41년 전 대학생들이 전남대 정문에서부터 쫓겨서 광주역으로 갑니다. 우리도 그 길을 따라 광주역으로 이동합니다. 학생들은 광주역 건물을 보니 왠지 주유소 같다는 얘기를 합니다. 둥그런 지붕과 은색 기둥이 기억에 남았나 봅니다.

 

(광주역 앞에서) 학생들은 광주에 '기자'가 되어 갔습니다. 그래서 기념비만 보면 필기구와 수첩을 꺼내듭니다. 지민이는 사진기자로서 취재 현장을 촬영합니다.

 

*학생들이 광주 일정을 짤 때 그 당시 상황의 흐름에 따라가 보자 했습니다. 여행 첫 날에는 18~19일, 둘째 날에는 20~21일... 이렇게 이동하면 여행 기간 동안 1980년 5월 18일을 시작으로 최후 항쟁이 있었던 5월 27일까지 살펴보게 됩니다. 거기에 더해 최후 항쟁 후 잡혀간 이들이 고초를 겪은 상무대(현 자유공원)와 망월동 국립묘지까지 들르는 일정입니다. 다른 미사여구를 붙일 필요도 없이 학생들이 모은 의견이 ‘참 좋다’라고 생각했지요.

 

 

 

“기록관에 가서는 안에 들어갔는데 총 맞은 창문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아주 크고 넓게 뚫려서 놀랐다. 주위에 새까맣게 타서 얼마나 위험했는지 느꼈다.”

“기록관에서 3층에서 다른 나라에도 518과 비슷한 일이 많았다는 걸 알게 됐다.”

 

 

5월 18일 화요일

아침부터 부지런히 걸어서 최초 발포지로 갔습니다. 15분 정도 걸었을까요. 길 건너편에 기념비가 보입니다.



(최초 발포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읽고 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김영찬 군이 총상을 입었고 죽을 고비를 넘긴다.)

 

나중에 학생들 얘기를 들어보니 길가에 사적 기념비만 덩그러니 남아있어서 허전했나 봅니다. 동상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무등 경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택시들이 차량 시위를 위해서 집결한 곳입니다. 운동장 주변을 돌아보다가 사적 기념비를 찾아냈습니다. 200여대의 택시가 모였던 곳. 1980년에 택시기사들이 울분을 담아 경적과 불빛으로 토해내기 시작한 곳입니다.



(차량 시위의 행렬이 시작된 곳. 옆은 택시 승강장이다.)

 

 

'무등 경기장'부터 그 당시 차량 시위 경로를 따라 달렸습니다. 그때처럼 천천히 가면 좋았겠지만 도로를 우리만 쓰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었지요. 80년 5월 20일 차량시위 행렬은 금남로에 닿았습니다. 그리고 금남로에서 멈췄습니다. 차량 시위에 당황했던 계엄군들은 무자비한 진압을 시작합니다.  그 당시 더는 넘어갈 수 없었던 '경계선'을 우리는 넘어서 달렸습니다.

 

금남로에 있는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으로 갔습니다. 그 당시의 물건들, 기록들로 가득합니다. 안에서 글자 하나, 흔적 하나 살피기만 해도 며칠이 걸릴 것 같습니다. 518관련 자료들은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초등학생 일기도 당시의 공포와 두려움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기록물들을 보는 학생들의 모습이 참 진지합니다.



(기록관 입구에서)

 

 

 

 

 

<주남마을 앞에 다녀왔습니다>

차량 시위 경로를 따라 금남로를 지난 우리는 그 길로 바로 화순 방향으로 달렸습니다. 시간 여유가 되고 주남 마을이 멀지 않아서 바로 다녀와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워낙 일정 중에는 없었지만 좋은 기회가 왔으니 놓칠 이유가 없었지요. 당시 광주에서 화순으로 넘어가는 버스에 총격을 가해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행 후에 <나는 계엄군이었다>라는 다큐를 과제로 냈었습니다. 주남 마을 총격과 연관된 계엄군의 이야기였는데 주남 마을에 다녀온 학생들 입장에서는 감회가 남달랐을 것입니다.

 

부상을 입고 살아남았지만 산으로 끌려가 죽임을 당한 두 청년의 위령탑에도 다녀오려고 했습니다.

중간에 나무를 베는 작업 차량에 막혀 가지 못해 못내 아쉽기는 합니다.

 



(주남마을 입구에서 미니버스 총격 사건에 대한 내용을 읽고 있다.)

 



(주남 마을 입구 사적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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