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 걷기여행 - 넷째날 12

작성자
최껄껄
작성일
2017-11-06 21:23
조회
1311
이제 물에서 나와 <침묵과 독서> 시간을 갖는다.

아이들이 자연스레 책을 들고 자기 자리를 찾는다.

그새 책을 다 본 아이들은 서로 바꾸어 읽는다.

 



 

깊은 침묵이 감싸안은 이곳은

 

평화롭다.

 



 



 

10코스는 <지리해수욕장입구-지리해수욕장-고래지미-도청들녘-도청리뒷등길>로 이어지는 약 2.67Km이다.

신흥리 해수욕장이 남성적인 느낌이라면, 이곳 지리해수욕장은 여성적이다.

노을지는 곳이 정말 아름답다는 소개가 있는데, 그 광경을 못 보는 것이 안타깝다.

 



 

10코스를 가면 11코스만 남는데, 11코스는 1.2Km의 약 21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거의 끝이 보였다.

그래서인지 발걸음이 많이 가볍다. 시간도 아직 많이 남았다.

 

또한 오늘은 첫 날 묵었던 한옥숙소에서 묵을 수 있다.

그곳에는 얼음을 잉태하는 정수기가 있다.

 



 

하늘이 예쁘다.

한국의 가을하늘은 여기 청산도에서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그렇게 우리는 청산도를 한 바퀴 돌아 첫날 묵었던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밝은 얼굴로 맞아주셨다.

 

아이들은 들어가자마자 정수기를 확인한다.

정수기도 환하게 우리를 맞이한다.

 

뱃속에 얼음을 한아름 안고서.

 



 

짐을 풀고 잠깐 모여 회의를 했다.

생각보다 일찍 숙소에 도착했다. 저녁을 먹기에 시간이 이른 감이 있다.

 

회의를 해보니, 그래도 좀 일찍 저녁을 먹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오늘 저녁은 향토음식이다.

메뉴는 자장면으로 정해졌다.

 

수소문해서 청산도에 유일하게 있는 중국집을 찾았다.

간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곳에서는 조개구이와 물회, 중화요리를 모두 주문할 수 있다.

식당 내부에 걸린 광고를 보니 물회 맛있는 집으로 티브이에 나온 적이 있다.

 



 

자장과 짬뽕 중에 무얼 선택할까 고민했던 몇 몇 친구들이 있었지만, 결론은 자장 곱배기로 통일이다.

자장면의 냄새가 우리를 자극한다.

그릇이 앞에 놓이자마자 전투적으로 변한다.

 

후루룩, 후루룩

 

소리만 날 뿐이다.

우린 남자모둠이니까.

 



 

자장을 다 먹고 식당 안에 있는 커피 자판기를 보며 한 잔 먹어도 되냐고 묻는다.

애들도 당이 떨어지나... 생각을 잠깐 하며, 그래도 좋다고 했다.

 

아이들이 자판기로 가서 커피를 뽑는다.

처음에는 이래도 되나 했던 아이들도 용기를 내본다.

 

이젠 커피 한 잔 들고 간식을 사러 간다.

간식을 사러 항구 근처로 나가야 한다. 그곳이 청산도에서 가장 번화가다.

 



 

20,000원 이내로 살 수 있다고 범위를 정해주었다.

아이들이 과자를 하나씩 카운터로 들고가 얼마인지 확인한다.

사장님은 무감한 표정으로 바코드를 갖다 댄다.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다음 과자, 그 다음 과자를 가지고 가 가격을 확인한다.

 

내 마음이 조급해진다.

빨리 서둘러 정리를 해야겠다.

 

결국 19,800원 어치의 과자와 음료수를 사가지고 숙소로 향한다.

 



 

들어와 자리를 정리하고 둘러앉았다.

부모님 주신 편지를 읽기 위함이다.

 

어렸을 때는 우리를 한 품에서 키우는 친구의 엄마, 아빠도 우리 부모님이란 생각으로 모두의 편지를 소리내어 읽는다고 설명해주었다.

수긍이 가는 아이도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었지만, 내 편지를 소리내어 읽는 것을 많이 불편해하는 아이들은 없었다.

편지를 읽는 모습을 찍다보니, 본의아니게 사진에 없는 친구가 생겼다.

그래서 전체 사진을 찍었다. 모두가 나올 수 있도록.

 



 

병희는 부모님 편지 읽는 것이 참 좋은가보다.

물론 아이들 모두 그 기쁨을 얼굴에 숨길 수 없었지만, 병희는 유독 그런 것 같았다.

 



 

태경이는 아닌 것처럼, 무심하게 읽는다.

그러면서도 내용 하나하나를 가슴에 새긴다.

 



 

산하는 눈물을 간신히 참는다.

친구들과 동생들이 놀리려고 한다. 얼른 입단속을 시켰다.

부모님 사랑이 참 깊다. 그걸 안다.

 



 

재서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편지 내용이 초등 때와는 조금 다르단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초등 때는 매년 복사한 것처럼 내용이 똑같았는데, 중등에 와서는 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 말해주었다.

이제 이 편지를 시작으로 5년간 복사해서 주실 수 있다고.

 

재서가 피식 웃는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한결이는 진지하다.

글자 하나라도 놓칠세라 꾹꾹 눌러서 읽는다.

그 진지함이 좋다.

 



 

동윤이는 미래의 아들에게 영상편지를 썼다.

나중에 미래의 아들에게 꼭 보여주면 좋겠다.

 



 

치원이는 가장 먼저 읽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 편지가 자랑스럽다.

그런 아들인 것이다. 치원이는.

 

민수는 나중에 집에가서 부모님과 편지를 주고 받았다.

민수가 좋은 방식으로 여행 때 못한 것을 했다.

 



 

그렇다.

내 엄마, 아빠가 나중에는 우리 엄마,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다.

 

편지를 읽고,

간식을 먹고.

 

잠깐 쉰다음에

 

이제는 자연스러운 일상이 된 글쓰기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배도 부르고, 부모님 편지도 읽고, 목표한 코스도 완주하고,

내일이면 집에도 간다.

 

기분이 좋다.

 

그렇게 마지막 밤이 저문다.
전체 1

  • 2017-12-13 21:38
    청산도 향토 음식이 자장면? ...성취감에 흥분해서 잠못든 마지막 밤이 었겠네요
    대견합니다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올라 오네요. 이번 편지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는데~~.. 무덤까지..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