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 걷기여행 - 셋째날 9

작성자
최껄껄
작성일
2017-11-06 19:40
조회
1129
문어를 주신 할아버지 덕분에 그곳 해변가에서 많이 놀았다. 계획된 시간보다 더 많이 썼다.

숙소도 아직 구하지 못했으니, 서둘러야 한다.

 

모두의 마음 속에는 우리의 숙소를 책임질 그분을 떠올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여행지에서 안심은 금물.

 

자리를 정리하고 목섬새목아지로 들어선다.

 

와, 여기는 정말.

밀림같다.

 

나무가 하늘을 가린다. 아주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가지 않은 것 같다.

약간은 무서운 느낌마저 든다.

 

숙소를 구하지 못해서일까, 아이들의 발걸음이 빠르다.

아까 가게에서 산 김치를 병희가 가방 안에 들고 간다.

 

그래서인지 힘들다.

힘들어서 집에 빨리 가고 싶냐고 물으면 그렇지는 않는다고 한다.

가방 메고 걷는 것이 힘든 것이지 청산도가 참 좋다고 한다.

 

1박을 더 하자고.

 

깊은 밀림으로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내딛는 병희의 뒷 모습이 성자 같다.

저 끈기는 장인의 고추장이 주는 힘에 기인하였으리라!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이 이어지더니 급하게 꺾이는 내리막이 나온다.

아이들도 긴장했는지 말이 없어진다.

조심 조심 한 발에 집중한다.

 



 

급한 경사를 내려오니 하늘이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울창한 숲으로 길이 이어진다.

말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따라간다.

 



 

그렇게 숲을 빠져나오자 이번엔 바다와 맞닿은 바위들이 나온다.

요 작은 섬에 이렇게나 많은 풍경이 있다.

 

하늘이 흐리다.

 

혹시라도 비가 올까 염려가 된다. 빨리가서 숙소를 잡아야겠다는 생각 뿐.

 



 

저기 앞에 보이는 작은 언덕을 지나면 된다.

바람이 불고,

하늘은 낮다.

 



 

이제 숙소를 잡으러 가자.

밀림을 나와서인지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자연이란 그런 것 같다. 멀리서 바라보면 참 좋은데, 그 속에 들어가면 두려움이 느껴진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카페에서 바라보는 빗줄기는 낭만적인데,

그 비를 맞으며 페달을 밟으면 두렵고 빨리 벗어나고 싶다.

 

저기 저 바다를 바라보며 걸으니 참 좋다.

그렇게 야생과 문명의 사이에서 나의 정체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또 다시 숙소가 걱정이 되었다.

 

여행은,

우리네 삶에서 먹고, 자고, 입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게 해준다.

이 위대한 가르침을 여행하지 않고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

 

소비사회를 사는 도시인들에게 말이다.

 



 

삼삼오오 자연스럽게 모여 이야기를 한다.

조금만 더 가서 숙소를 구해보자.

 



 

신흥리 해수욕장에 도착해서 천사에게 전화를 해보았다.

 

'제발 받아야하는데...'

 

통화 중이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두어 번 전화 끝에 통화가 되었다.

 

혹시나 귀찮아하시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괜한 염려였다.

천사는 화를 내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깜빡 잊었던 것이다.

천사의 도움으로 바로 뒤에 있는 좋은 펜션을 얻었다.

몇군데 전화를 하고, 가격조정을 했었는데, 이 집만 12만원에 가능하다고 연락이 왔단다.

 

어딜까...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펜션주인 부부가 나오셨다.

 

와, 우리를 친히 맞이하러 오시다니.

천사의 영향력이 이정도일 줄이야.

 

오늘 저녁은 라면이다. 아니 문어라면이다.

주인 아주머니께 문어를 보여드리며, 먹물을 제거하고 싶다고,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여쭤보았다.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본인이 해주시겠다며 깔끔하게 손질을 해주셨다.

 

와, 감사하다!

 

산하의 표정.

 

여행와서 사진 찍을 때 보인 최고의 표정이다.

이보다 밝을 수가 있을까? 입꼬리가 위로 올라간 것은 물론이고 양 볼과 눈가까지 웃음이 번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치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다.

문어의 힘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한결이는 모든 사람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한 번 삶아낸 다음 적당하게 자르고 있다.

 



 



 

문어는 라면을 삶은 후, 따로 넣기로 했다.

음, 정말 맛있다.

 



 

이렇게 셋째 날 밤이 저문다.

 

예상과는 다르게 아이들은 문어가 질기다고 많이 먹질 않았다.

 

다행이다.

 

내 입에는 전혀 질기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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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06 20:42
    ㅎㅎㅎ 다행이에요..
    문어라도 드시고 힘내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