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농적 삶 12일차

작성자
kurory
작성일
2017-10-27 21:09
조회
1309
마지막 하루의 시작

새벽 6시가 다된 시각. 마지막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침은 밝았지만 동은 트지 않은 시간입니다. 밖으로 나가보니 모두 방에 불을 켜고 하루를 열 준비를 합니다.



오늘 아침은 저희가 먼저 밝혔습니다.

아침 식사

참 운이 좋습니다. 일주일 전에 여기 들어오기 전만 해도 고기는 꿈도 못 꿨습니다. 하나로 마트에서 찬거리를 사면서도 고기에는 눈길 한번 안 줬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도 저희는 돼지 불고기, 쌈채소, 시래기국, 어묵 등으로 풍성하게 먹었습니다. 어제 저녁 때 이곳 행사 때문에 저녁으로 먹었던 메뉴인데 아직도 남아있었습니다. 협업농장에서 하는 마지막 식사는 의도치 않았더라도 상당한 대접을 받고 나온 모양이 됐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협업 분들도 정말 대접을 많이 해주셨고요. 아침 식사를 양껏 하고는 마지막 작업을 위해서 농장 입구로 향했습니다.

탈곡기

협업 분들도 한 분, 두 분 모이기 시작합니다. 저희도 모두 3번동 안에 모여서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될지를 이야기하면서 기다렸습니다. 부천 산어린이 학교 학생들도 와야 해서 체조는 잠시 뒤로 미뤄두고 먼저 바깥 쪽 논바닥에 놓여있는 탈곡기를 운반하러 갔습니다. 어제 장곡 초등학교 학생들이 활동을 하며 사용한 것 같습니다. 저는 실제 탈곡기를 처음 봤습니다. 탈곡기라고 하면 기계로 돌리겠거니 막연히 생각했는데, 발로 원통을 돌려서 탈곡을 하는 기구도 있고, 세워놓고 손으로 볏단을 내리치고 당겨서 탈곡을 하는 도구도 있습니다.



탈곡기를 운반하러 가는 규빈과 지수



탈곡기 시범을 보이는 정영환 선생님



운반 직전



탈곡기 운반 중인 경빈과 규빈



탈곡기 운반 중인 은기와 준서

오전 작업

탈곡기를 이장님 댁 옆에 있는 창고 쪽으로 옮겨놓고는 막 도착한 부천 산어린이 학교 학생들과 함께 체조를 시작했습니다. 체조를 마친 후 학생들은 상추 재배에 합류했습니다. 오늘 발주를 해야 하는 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약 1시간 정도는 상추 재배를 하고 8시 30분경부터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묵었던 숙소의 방과 화장실을 각자 역할을 나눠 깨끗하게 치우고 정리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농장에서 모두 함께 사용하는 공용 화장실도 청소했습니다. 청소를 모두 마친 후 각자 배낭을 메고 농장 세미나실로 향했습니다.



깨끗하게 치운 방

인터뷰

3일 전쯤 작은 인터뷰를 기획했었습니다. 기획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긴 하지만 협업농장의 황준수, 김현주 선생님을 잠깐 뵙고 대안학교 선배로써 조언을 해주거나 궁금함을 해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저번 토요일인가 강의 후기에서 대안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궁금했는데 좋았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저희 학생들은 학교 선배들이 없고 또 이렇게 대안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바쁜 때이기는 하지만 짧게라도 만남 시간을 갖는다면 좋겠다 생각이 들어서 요청을 드렸습니다. 워낙에는 어제 쪽지에 질문을 적어서 글로 답변을 주시기로들 했지만 보통 난이도의 물음들이 아니라서 오히려 쓰는 게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아 나가는 날이지만 짧게라도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9시 30분쯤 인터뷰가 시작 됐습니다.

(인터뷰 내용은 따로 녹취를 했으며, 녹취를 들으면서 정리해 올리겠습니다.)

규빈

만약 대안학교를 안 나왔다면 지금은 무엇을 하고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의 대답이 인상에 남아 있어요. 자기 대학과 스펙에 맞춰서 본인의 등급을 매겼을 것이라는 답변이... 선생님의 친구들이 내 인생이 끝났다고 얘기했다는 걸 듣고 나서(참고로 21살의 친구들) 약간 충격적이었어요. 제가 일반학교를 다녔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저 스스로도 하게 됐는데 저도 그럴 것 같은 거예요. 대학을 가기 위해 죽어라 공부하다가 포기할 수도 있고, 그러다가 대학에 가서 취직하려고 기를 쓰고 있을 거 같았어요. 많은 사람이 걷는 길을 걷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반학교를 가도 그렇게 살지 않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은기

정영환 선생님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협업농장과 지속적인 관계를 갖고, 내년 그리고 후년 또 오라는 이야기였는데 매 해마다 사람이 바뀌니까 그 바뀌는 모습 안에서도 느끼고 배우는 게 있을 거라고. 다시 오라는 그 말씀이 진심으로 느껴졌어요. 저희 한 명, 한 명에 대해 해주시는 말씀도 좋았어요.

준서

김현주 선생님이 풀무학교 출신이라는 거, 그리고 협업농장에 다니고 있다는 게 좋았어요.

경빈

저는 제가 생각해도 어려운 질문들 같은데 본인의 철학을 담아서 답변을 주시는 것을 보고 어른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이전에 산돌을 다닐 때 4~5학년 선배들이 참 멋있게 보였거든요. 제가 그 나이가 됐고, 그런 모습은 아니지만,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선생님들과 같은 그런 모습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지수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시는 게 좋았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아쉬웠어요. 영환 선생님이 다음에 오라고 말씀하시는 걸 듣고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준 분들의 나이는 20대 초반. 학생들에게는 가까운, 저에게는 먼 나이입니다. 저 나이 때 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살고 있었는지 떠올려봅니다. 현주 선생님의 이야기대로 저는 고등학교 3년 동안은 오로지 대학에 입학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교와 집이 다였습니다. 새벽 같이 집을 나서 학교에 가서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하고, 졸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 동안은 어떤 걸 공부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다가 집에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가면 씻고 자기에 바빴던 3년입니다. 생각의 힘이라는 걸 키우기보다는 혼나지 않게 과제 꾸역꾸역 해 가고, 수능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거의 항상 생각했고, 모의고사 점수에 제 가치가 올라갔다 떨어졌던 3년을 보냈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수시에 모 대학 국어교육과를 지원하고 면접을 볼 때, 이런 문제가 나왔습니다. 현재 한국 경제가 어려운데 이걸 타개하기 위한 어떤 방법이 있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국산품 애용이라고 답했습니다. 그게 끝이었고, 제 시야는 거기까지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예 틀린 답은 아니지만 너무 단순하고 아무 생각도 안 해본 답변입니다. 밑바닥이 드러난 겁니다. 그렇게 수능을 준비한다고 문제 풀고 책과 씨름을 했지만 어려운 경제를 풀어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답변을 못했습니다. 물론 국가 정책을 세우는 사람마냥 답변할 수는 없지만 최소 그런 상황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해 보는 기회는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교사가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차차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제가 교사가 되는 방법은 알고 있었습니다. 교대나 사범대에 입학하고 임용고사를 보고 합격하면 교사가 됩니다. 이런 방식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나 저는 어떤 교사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저런 선생님을 내 롤모델로 삼아서 이런 능력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교사가 됐으면 하고 바랬습니다. 이런 마음이니, 제가 대학에 들어간들 실력을 쌓고 임용을 볼 수 있도록 준비하는 걸 열심히 할 리가 없습니다. 묶여있던 3년 동안 해보지 못한 것들을 마음껏 하고 지내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았습니다.

참 긴 시간이 지났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교사를 하고 있습니다. 꿈을 이루었다면 이룬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진짜 교사가 되고 선생님이 되는 건 또 다른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 하지 못한 그 고민들, 생각들을 이제라도 할 수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입니다. 제가 헛되이 보냈다고 생각하는 고등학교 3년과 20대 초반의 시간들. 그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서 저는 지금 만나는 학생들에게 또 다른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안 갔으면 하는 이 길을 먼저 걸어봤으니, 걸었으면 하는 저 길을 더 힘을 주어 가리킬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쓰이는 걸 보면 아주 헛된 시간들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바쁜 날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간을 내어주신 두 분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고 싶습니다. 대략 20분 정도 되는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짧은 듯한 시간 안에서도 깊은 이야기들이 많이 오갔습니다.

기념사진

인터뷰가 마무리 된 후에 저희는 아침마다 모이는 3번동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기로 했습니다. 사실 하우스 앞에서 간단하게 찍거나 모두 작업 중이시니 방해 안 되게끔 쌈 채소를 배경으로 간단히 찍으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밭고랑으로 사이사이 서게 됐고 꽤 괜찮은 구도가 잡혔습니다. 협업 농장에서 남긴 기념사진으로는 정말 잘 어울렸습니다. 농장에서 담당해주신 분들과도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농장을 한번 돌았습니다. 돌면서 그 동안 인사를 했던 분들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복실이도 다시 한 번 봤습니다. 저희는 모두 배낭을 메고는 장곡 초등학교 쪽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농장에서 기념사진, 농장과 정말 잘 어울리는 기념사진



저도 들어가서 함께 찍었습니다.



영환, 현주 선생님과 함께



찍고 나오려니 산어린이 학교 선생님이 찍어준다고 하셔서 저도 들어가서 한 컷

집으로

그 동안 생미 식당을 가면서 거쳤던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농적 삶이 이제 마무리된 단계인데 어찌 배낭들은 더 무거워진 것 같은 느낌입니다. 배낭도 무겁겠지만 머리도 많이 무거울 겁니다. 나쁜 의미의 무거움이 아니라,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처럼 11박 12일 동안 보고 배우고 생각한 내용들이 머릿속에 가득해서 무거울 겁니다. 그런 무거움이라면 얼마든지 좋습니다. 장곡 슈퍼 앞에서 대략 3분 정도 기다렸을까요. 저 앞에서 버스가 오는 게 보입니다.



버스 타러 가는 길

광천역으로

버스 기사 분이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십니다. 젊은 사람들 6명이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시골 버스에 올라타는 광경은 생소하셨을 겁니다. 광천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친절히 광천역 방향도 알려주십니다. 버스에서 내려 모두 광천역으로 향해 걸었습니다. 광천도 그리 크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걷다 보니 옆으로 시장 입구도 보입니다. 광쳔역에 도착 후 역 옆 작은 공원 돌담에 짐을 내렸습니다.



규빈



아, 은기가 빠졌네



배낭을 다 지고 왔다갔다 할 수 없고 아침도 배불리 먹어서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했습니다.

후반부를 정리하며

시간이 촉박할 것 같아서 기차 탑승 후에 후반부 정리 내용을 쓰고 수원역에서 내려서 간단하게 나눔을 하고 헤어지기로 계획을 잡았었습니다. 다행히 광천역 도착 후 2시간 정도가 남아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후반부를 마치는 글을 쓴 후에 나눔까지 모두 하기로 했습니다. 각자 앉아서 후반부 마무리 글을 썼습니다. 공원 한 쪽 나무 바닥에 모두 주저앉아서 나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규빈

드디어 집에 가는 날이지만 실감 나지 않는다. 역 앞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협업농장으로 들어갈 것 같다. 첫날 볼 때는 오래 걸릴 것 같던 농적 삶이 벌써 끝난다. 이틀 정도 만에 협업에 적응해서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고 9시가 되면 간식 먹고 12시 반 되면 점심 먹고 집에 가서도 패턴이 그대로일 것 같지만 하루이틀 뒤면 금방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하루 두 끼 먹는 생활이 될 것이다. 다음에도 가고 싶은 곳이 협업이다. 변산 때도 그랬듯이 다시 가고 싶다. 친절한 사람들, 맛있는 생미 식당, 귀여운 복실이, 강아지 보람이, 좋은 환경과 시설이 마음에 든다. 또 오고 싶다. 아직까지도 농장에서 일을 해야 될 것 같다.

지수

후반부는 예상 외로 배움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협업농장에서 인상 깊었던 것들이 많았다. 마주 보고 얘기하면서 수확하는 쌈채소라는 아이템도 좋았고, 젊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또한 우리가 생산과 유통, 그리고 소비의 과정까지 다 경험하게 되어서 아주 행운이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생미 식당이 좋았던 것은 맛뿐만 아니라 대부분 지역 내에서 생산된 로컬 푸드를 이용해 조리한 음식들을 먹을 수 있어서 책임있는 소비를 한다고 느꼈다. 물론 내돈으로 먹지는 않았지만. 또한 이전 변산에서 3박 4일 보낸 것보다 시간이 훨씬 빨리 갔던 것 같고 농업인들과 농업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진로의 한 옵션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변산은 몇몇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의 한 예를 보여줬다면 홍성 장곡은 지역 내외, 서로 연결된 탄탄한 끈으로 이루어진 지역 사회의 모범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은기

전반부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지만 그래도 협업농장에서 제일 값진 경험을 한 것 같다. 농장에 계신 분들도 아주 좋으신 분들이었고 일도 딱히 힘들지 않았다. 협업농장은 이름대로 '협업'이 아주 잘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강의도 마지막 강의를 빼면 좋은 내용이었다. 그리고 꼭 노가다 같이 일하는 게 아니고 어느 정도 누릴 수 있는 걸 다 누리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어서 좋았다. 1년 동안 많은 공동체를 다녀 봤지만 협업농장은 유일하게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공동체였다. 좋은 곳에서 아주 값진 경험을 한 후반부 일정이었던 것 같다.

준서

우리는 젊은협업농장을 떠났다. 우리는 지난 여행 동안 많은 일을 해서 너무 즐거운 하루였다. 나는 지난 여행 동안 많은 여행을 해서 너무 좋은 하루였다. 나는 후반부에서 도서관 수업이 좋았다. 홍성여행은 정말 즐거운 여행이다. 나는 농장에서 정영환 선생님이랑 이은정 선생님이랑 같이 수업하는 것이 좋다. 도서관에서 박완 선생님의 강의도 좋았다.

경빈

드디어 11박 12일의 일정이 끝났다! 후반부는 협업농장과 행복농장을 왔다갔다 하면서 일을 했다. 피부가 엄청나게 탈 줄 알았는데 거의 하우스 안에서 하는 작업이라 조금 밖에 안 탔다. 하루종일 밭일만 한다고 해서 엄청난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게 지냈다. 좋은 분들도 많이 계셔서 일 하는 동안 지루하지도 않았고 많이 배우게 됐다. 강아지도 상추도 선생님들도 그리울 것 같다. 강아지 보람이가 테니스 공을 무지 좋아하는데 조금 더 놀아주지 못해서 아쉽다. 카메라 무겁게 들고 다녔는데 일 하느라 바빠서 사진을 많이 못 찍었다. 후반부 일정을 좋게 마무리해서 기쁘다. 돌아가서 2주만에 당구칠 생각 하니까 걱정이다.

기차 탑승



기차 플랫폼에서



규빈, 유럽 여행 다녀온 줄



지수



무궁화호가 들어옵니다.



모두 6번차로 이동



광천 다음에 홍성역에 섭니다. 농적 삶 첫 날 도착했던 곳. 이렇게 다시 지나치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기차 안에서

은기와 준서는 곯아떨어졌습니다. 규빈은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컴퍼스와 펜을 들고 열심히 자전거를 그립니다. 경빈은 책을 꺼내듭니다. 지수는 음악을 듣다가 자동차 그림을 그립니다. 저는 오늘 하루 내용을 노트북을 열고 정리하다가 졸다가 했습니다. 이윽고 기차는 천안을 지나고, 평택을 지나서 수원으로 들어섰습니다.

수원역

수원역 도착

모두 짐을 지고 내렸습니다. 처음 우리가 출발했던 수원역 2층 대합실로 올라갔습니다. 2주 밖에 안 됐는데 참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저희는 다시 '소비'로써 삶을 살아가는 현장에 '촌'스러움을 갖고 돌아왔습니다. 모든 일정이 끝났으니 분명 모두 피곤할 겁니다. 2층 대합실로 올라가는대로 둥그렇게 서서 최종 마무리와 인사를 했습니다. 주말 동안 이번 모든 일정에 대한 후기를 작성해서 월요일까지 내어달라고 한 후에 11박 12일 동안 고생 많았다고 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명씩 모두 악수를 한 뒤에 헤어졌습니다. 저도 짐을 매고 끌고 전철역으로 향했습니다.

10월 27일 금요일 밤 10시 11분

아침에는 장곡에서 눈을 떴는데 지금은 다시 집에 돌아와 있습니다. 꿈을 꾸다가 깼을 때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꿈이 현실인 것 같고, 현실이 꿈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꿈에서는 정말 생생했는데 갑자기 깨고 보니 방 안에 있을 때 순간적으로 혼동이 오는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기분과 느낌을 설명하자니 이 경험이 가장 적당할 것 같습니다.

11박 12일 동안 꿈 속을 헤매다가 왔습니다. 홍동 갓골에서 보낸 4박과 장곡에서 보낸 7박이 한 데 어우러져 하나의 꿈이 됐습니다. 그 많은 배움들, 만남들, 시간들, 인연들이 모두 하나의 조각이 되어 제 기억 속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시간 동안의 경험과 생각들이 단지 기억으로만 머문다면, 신념은 갖되 실천을 하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좀 더 촌스러워졌는지 모르겠습니다. 함께 한 학생들도 많이 촌스러워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그곳에서 배운대로 촌스럽게 산다면 꿈을 꿨으되 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고, 현실이 꿈이 되고 다시 꿈이 현실이 되도록 조금씩이나마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지수, 은기, 준서, 경빈, 규빈에게 여기에도 고맙다는 인사를 남깁니다.

학생들과 함께 지내며, 학생들의 글을 정리하고 생각을 엿보면서 배운 점들도 많습니다.

인솔 교사로써 함께 갔지만 한 사람으로써 더 없이 좋은 기회였고 시간이었습니다.

집에 애들 셋을 두고 이렇게 농촌에서 거의 2주를 보내고 올 수 있었다는 건 정말 행운입니다.

물론 여러 많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입니다.

이렇게 많은 도움을 받아서 그곳에 내려가 많은 것들을 얻어왔으니 이걸 제 안에만 품고 있으면 안 되겠죠.

제 안에 얼마 안 되지만 고이 품어서 갖고 올라온 것들을 어떻게 풀어낼지가 저로써는 두 번째 농적 삶의 시작입니다.

오늘까지 11박 12일의 기록을 마치겠습니다.

1.중간에 학생들의 발표 녹음과 오늘 인터뷰에서 선생님들의 이야기 녹음 내용은 정리가 되는대로 추가해서 올리겠습니다.

2.저의 기록은 일정 마무리와 함께 끝이 났지만 다음 주에 전체 일정에 대한 학생들의 마무리 글들을 취합하고 저도 전체 일정 돌아보기로 글을 정리해서 올릴 예정입니다. 흔히들 에필로그라고 말하는 전체의 후기이자 갈무리인 셈입니다.

전체 1

  • 2017-10-31 09:27
    아.. 이야기가 끝났네요..
    이야기를 따라따라 저도 한바탕 꿈인냥 푹 빠졌었어요.
    아이들과 함께 해주시고, 긴~~~ 후기를 남겨주신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협업농장이 결국은 체험농장인건데, 우리 아이들이 체험하지 않고 살다 온 것 같아서 정말 좋습니다. 자랑스러워요~ 몸이 힘든 여행은 아닌듯 싶지만, 배움이 되는 귀한 시간이었던 듯..
    그곳 선생님들 말처럼 매년 가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