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농적 삶 10일차

작성자
kurory
작성일
2017-10-25 20:05
조회
1119
수요일 아침

수요일 아침이 시작됐습니다. 몸살 감기는 몸에서 많이 떨어져 나갔지만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요 며칠은 한 발 늦게 조리동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피로가 쌓인 탓도 있지만 먹을 게 풍부해지다 보니, 아침 일찍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늑장을 부리기도 합니다. 덕분에 오늘 아침에는 농장으로 향하면서 조리동을 포근하게 채운 노란 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 동이 터오는 것도 보입니다.

작업할당

아침 식사와 체조 후에 저희는 작업을 할당 받았습니다. 저와 준서는 9번동에 가서 당귀 밭 사이로 자란 잡초를 제거해야 합니다. 은기, 규빈, 지수, 경빈은 상추를 먼저 수확합니다. 저는 준서와 함께 9번동으로 향했습니다. 맨 오른쪽에 당귀와 잡초들이 보입니다.



작업 시작 전 이야기 중인 은기, 경빈, 지수

잡초제거

저는 호미로 잡초들을 긁어냈습니다. 잡초들이라고 하지만 그 사이에는 클로버와 민들레도 섞여있습니다. 특히 민들레가 기억에 남는데, 민들레 뿌리가 그렇게 깊고 단단한지 몰랐습니다. 민들레는 긁어내면 잎사귀들만 내어주고 뿌리는 그대로 땅에 박고 있습니다. 민들레를 뿌리까지 뽑으려면 호미로 땅을 약간 파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뿌리를 잡고 잡아뺍니다. 길에서 민들레를 마주할 때면 그렇게 보기가 좋은데 이렇게 잡초로 대하니 보통이 아닙니다. 당귀 밭에 뿌리를 내린 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준서는 저와 함께 잡초를 뽑다가 제가 뽑아낸 것들을 모두 수거해서 입구 쪽에 쌓기 시작했습니다. 분담을 해서 하니 수월해집니다.



맨 오른쪽이 당귀밭

작업 중 아이들 목소리가 들립니다. 듣자하니 장곡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추수 활동을 하러 왔습니다. 논에 서서 벼들을 베어내고 오누이 강당 앞 마당에 앉아 누구는 절구통으로 빻고 있고 누구는 키를 들고 들었다 놨다 합니다. 마침 날씨도 좋아서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수확한 곡식으로 작업을 하는 것이 참 보기 좋습니다. 강당 신발장 옆에 보니 낯익은 글이 붙어있습니다. '밥은 하늘입니다'의 노랫말이 쓰여있었는데 초등학교 학생들이 함께 보며 부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돌아가는 장곡 초등학교 아이들



상추 수확 중



너무 순한 복실이



잠깐 쉬다가 돌아가는 중 발견한 그림자 눈



조리동 전경

점심 먹으러 가는길

점심이 되어 생미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모두 트럭 뒤에 올라탔습니다. 시원하게 바람을 맞으면서 달리는데 논에 놓여있는 크고 하얀 통들이 보입니다. 전에는 그 통들을 보면서 큰 비닐을 말아놓은 것인가 했습니다. 겨울 내내 혹시 논을 저걸로 덮어놓으려고 하는가 막연한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알게 됐는데 그 통 안에는 수확 후에 남은 볏단들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 통 안에서 공기가 접촉되지 않는 상황에서 발효가 되고 나중에 소여물로 쓰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뭔가 큰 사실을 배우게 된 것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이렇게 현장에서 보고 듣고 하는 것만큼 좋은 배움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나중에는 논에서 두루마리 휴지가 있다는 얘기까지 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보건소

점심 식사 후에 경빈이를 데리고 보건소에 갔습니다. 경빈이가 워낙 밤에만 코를 훌쩍인다고 하더니 이제는 낮에도 훌쩍인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생미 식당에서 식사 후에 바로 걸어서 가기로 했습니다. 걸어서 5분 정도 거리라 멀지 않습니다. 보건소에 들어서서 이름을 적고 기다리자니 잠이 솔솔 옵니다. 보건소에서는 5일치 약을 챙겨줬습니다. 돌아갈 때까지 충분한 양입니다. 보건소에서부터 다시 걸어서 농장까지 이동합니다. 약 10분 정도 거리인데 넓게 펼쳐진 논을 한쪽에 두고 걸으니 여유도 생기도 소화도 잘 됩니다.

오후 작업

저와 준서는 남은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서 9번동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은기, 규빈, 지수, 경빈은 오전에 시작했던 호스 제거 작업을 계속 합니다. 호스 제거 작업이 그렇게 녹록한 작업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옷은 흙투성이가 되고 호스를 접고 접다가 날카로운 부분에 찔리기도 합니다. 오늘 내로 모든 하우스에 있는 호스를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 작업은 길어질 것 같은 느낌입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보니 다른 사람 없이도 잘들 해내고 있습니다. 준서는 풀을 계속 꼼꼼히 수거하고 있고 저는 남은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서 다시 호미를 잡았습니다.

저녁식사 준비

오후 4시경, 잡초 제거가 끝났습니다. 좀 쉬다가 혹시 할 것 없는지 묻기도 하다가 식사를 준비하러 갔습니다. 오늘 저녁 메뉴는 만두국입니다. 역시나 처음 도전하는 메뉴라서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남은 국멸치와 다시마를 모두 털어냈습니다. 양파와 파를 썰고 준비합니다. 냉동 만두도 꺼내서 미리 가져다 놓습니다. 간을 보니 영 싱거워서 간장을 넣고, 소금을 넣었는데 여전히 싱겁습니다. 소금을 아무리 넣어도 맛이 잘 안 납니다. 싱거우면 소금 넣어서 먹으라고 해야겠다고 하고 나무 주걱 넣어서 휘휘 저으면서 익기를 기다렸습니다. 6시인가 6시 30분이 되었는데 그때서야 학생들이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경빈이가 들어왔는데 옷에 흙이 군데군데 묻어있습니다. 어쨌든 다 끝내버린 것 같습니다. 싱거우면 소금 넣어 먹으라고 하고 한 그릇씩 퍼줬는데 먹어보고는 맛있다고 합니다. 배고플 때 맛없는 게 어디 있을까요.

 

엽서 만들기

작업도 늦게 끝났고 쉬는 시간도 필요하겠다 싶어서 다른 활동 하지 않고 8시 30분에 다시 모여서 엽서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저희를 담당한 세 분의 선생님께 엽서를 만들어 드리기로 했었는데 2명이 한 분씩 맡기로 하고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편지글을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저까지 해서 6명이 작업을 모두 마치니 9시 30분이 넘어갑니다.

하루를 마치며

오늘 하루만 지나면 이제 하루 남습니다. 학생들과 하루닫기를 할 때 변화가 하나 생겼습니다.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이 종종 나왔는데 이제는 여기에 한 마디가 더 붙습니다. 떠날 때가 되니 아쉽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쉬움을 느끼다니 잘 됐구나 싶었습니다. 만남에는 약간씩 아쉬움이 남아야 다음 만남을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쉬워야 한 번 더 생각하고 떠올리고 또 나중에라도 기회가 되면 올 수 있을 겁니다.

덧붙이기

협업농장 매니저 선생님이 전하기를 어제 양파 포장하는 걸 잘 해줬다고 합니다. 영농 조합에서도 썩 만족한 모양인데 사과와 소시지를 으례히 주는 게 아니었습니다. 보통 영농 조합에서는 이렇게 실습 차 나온 학생들을 그렇게 반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해도 제대로 안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는 참 기뻤습니다. 열심히 한 보람도 있었고요. 이 이야기를 하루 닫기 시간에 전하기 아이들도 모두 뿌듯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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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28 12:43
    사진들을 보니 아이들이 하우스 농업에 발군의 실력을 보이는것 같은데 조합사업으로 농업도 진지하게 고려해볼만 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