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농적 삶 5일차

작성자
kurory
작성일
2017-10-20 10:37
조회
1412


 

아침 명상

아침부터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습니다. 쌀쌀하지만 포근한 아침입니다. 오늘 아침 명상 주제는 '갓골'을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잠깐 생각해 보니 '갓골'을 이야기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한 1년은 살아봐야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저희가 본 갓골의 모습은 10분의 1 정도나 될까 하는 마음에 명상 주제로는 안되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건네준 주제가 '밝맑 도서관'입니다. '밝맑 도서관'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도착한 날부터 하루 한 시간 가량 꼬박꼬박 드나든 장소였고 여기에서 그래도 개 중에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인 것 같습니다.

규빈 - 밝맑 도서관은 개성있는 곳이다. 다른 도서관들과는 느낌이 다르다. 도서관에 들어가는 문의 모양이 책꽂이 모양이었는데 눈에 띄었다. 피곤할 때 가면 졸린 곳이기도 하다.

경빈 – 이름이 희한해서 기억에 남는다. 1층 밖에는 안 가봤지만 어른들 책과 아이들 책이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 매일 조용히 책 읽는 시간이 있어서 좋았다.

은기 – 밝맑 도서관은 이 지역의 중심점이 되어준다. 밝맑 선생님의 철학을 이어가는 곳인 것 같다.

지수 – 밝맑 도서관은 우리들의 도서관이다. 물론 지역 주민들이 세운, 지역 주민들의 도서관이다. 직접 세웠기 때문에 애정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역 사회와 관련된 책들이 많다. 상당히 개성이 있고 애정이 가는 도서관이다.

뒷정리와 마무리

아침 식사와 도시락 싸는 것까지 마친 후에 저희는 뒷정리를 시작했습니다. 방에 남은 것, 어질러진 것이 없나 다시 한 번 살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너무나 좋아하는 장소였던 부엌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설거지도 깔끔하게 해놓고, 바닥도 쓸었습니다. 뒷정리까지 모두 마친 후에 모두 한 자리에 모여서 4박 5일에 대해 마무리하는 글을 쓰고 나누었습니다. 마무리까지 모두 마친 후에 장을 보러 나가서 일주일 동안 먹을 '양식'을 샀습니다. 또 지치고 식사까지 기다리기 힘들 때 허기를 달래줄 간식들도 샀습니다.  챙겨둔 배낭들을 두고 게스트 하우스 주인 분께 학교 방식으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준서가 '몸 바로'를 외쳤고 모두 한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인사를 한 후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경빈이는 여기서 소원을 풀었습니다. 파주 여행에서는 고양이한테 다가가면 다 도망갔거든요. 여기 고양이는 거의 강아지입니다.)

전반부를 마무리하며

송지수

우리가 원래 12일간 농사를 지을 예정이었으나 타그룹과 일정이 겹쳐서 어쩔 수 없이 4박 5일은 이곳 갓골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내게 되었지만 예상 외로 좋은 배움을 가졌다. 어떻게 보면 협업 농장에 가서 일하기 전에 꼭 필요했던 과정이지 싶다. 갓골 마을 내에서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지역 사회를 충분히 경험한 것 같다. 침묵과 독서 시간에도 읽은 책의 소감을 정리해서 서로에게 나누는 것도 좋았고, 아침마다 명상하는 것도 좋았다. 여행 오기 전에 이 전반부 4박 5일간의 일정에서 시간을 헛되게 보내면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아주 유익하고 알차게 보낸 것 같다. 이제 열심히 농사를 지으러 가야겠다. 변산보다 덜 힘들기를 간절히 빈다.

최은기

전반부는 그래도 편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참 많은 시간이 지나간 것 같은데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다는 것이 참 충격적이다. 이제 편한 곳을 떠나 불편한 곳으로 들어간다. 시간이라는 것이 참 더디게 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 전반부였다. 그래도 홍성과 협업농장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홍성 자체가 좋다고 보긴 어렵지만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후반부에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빈다.

박규빈

여행을 시작한 지 5일 지났다. 5일 동안은 숙소에서 공부만 해서 그런지 빠르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일부터 고생 시작... 오늘이면 집에 갈 것 같지만 아직 7일이 더 남았다. 지금까지 추세로는 금방 갈 것 같지만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엄청 길게 느껴질 듯 하다. 집에 가고 싶고 형들과 호연이와 놀고 싶다. 어제와 그저께 일기에 썼듯이 휘서가 부럽다. 국토종주 때도 2주(12일)이었지만 그때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고 지금은 다르다. 여기 갓골 마을은 또 와도 좋을 것 같다. 물론 놀러오는 거지만... 이제 곧 협업농장으로 간다. 재미있고 많이 안 힘들길 빈다.

김준서

우리는 이제 갓골 게스트하우스를 떠난다. 우리는 이제 젊은 협업 농장으로 간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남은 시간은 이제 7일이다. 여섯 밤만 자면 집으로 간다. 나는 농장으로 가서 농사를 지을 것이다. 우리는 4박 5일 동안 갓골 게스트하우스에서 계속 생활하면서 너무 좋은 하루였다. 나는 꿈뜰에서 달팽, 비빔이이 지시하는대로 일을 열심히 하고 행사 준비도 잘 하고 친구들이랑 꿈뜰에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이경빈

전반부 일정이 끝이 났다. 전반부는 갓골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냈는데, 쾌적한 시설 덕분에 여유롭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쁜 고양이랑 좋은 도서관, 책방 등등 모두 좋았다. 마을이 워낙 아기자기 예뻐서 예쁜 사진도 많이 찍었다. 나중에 가족들이랑 같이 와 보고 싶다. 어제는 여기 주인 분께 드릴 엽서를 썼는데 오늘 아침에 전해드리니 고마워하셔서 너무 뿌듯했다. 임은숙 쌤이랑 휘서는 오늘 떠나는데, 남은 여행 동안 심심할 것 같다. 선생님이 가져오신 상실의 시대 주고 가신다고 해서 그걸 읽으면서 선생님을 향한 그리움을 달래면 될 것 같다(?). 협업농장에서도 잘 지냈으면 좋겠다!

갓골 느티나무 아래 짐들을 풀어놓고 도시락을 먹은 저희는 자유 시간을 갖고, 누구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 누구는 그물코 출판사 안에 들어가 둘러보기도 했습니다. 아쉬움을 달래주기에 넉넉했던 시간입니다. 저희는 배낭을 메고 장곡을 향해 떠났습니다.

도산 2리 입구

식자재가 들어있는 상자들을 내려놓고, 배낭들도 벽에 기대놓고 잠시 쉬었습니다. 도산 2리. 젊은 협업 농장이 있는 곳입니다. 오는 버스를 타는데 정말 기겁을 했습니다. 1시 55분 버스라고 쓰여있었는데 지수가 앞을 보다가 '어!'하는 소리를 냅니다. 이제 47분인가 50분인가 됐는데 버스가 갑자기 나타난 겁니다. 잠깐 기다리는 동안 완전 무방비 상태로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있던 참이었는데 버스가 갑자기 나타나니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이 버스를 놓치면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먹던 것들 입 안에 그대로 털어넣고 급하게 배낭을 메고 허둥지둥 상자들을 들고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장곡 방향으로 버스가 잘 가다가 갑자기 왼쪽 샛길로 들어섭니다. 이 버스 잘 탄 건가 싶으면서도 불안해서 폰을 꺼내 지도를 보는데 정반대로 가는 겁니다. 이거 한 번 물어봐야겠다 싶으면 또 맞는 방향으로 틀고, 괜찮은 거구나 생각하면 또 반대 방향으로 틉니다. 그 구역 안에 있는 마을을 돌고 도니 원래 제가 찾아봤던 노선과는 영 다른 모양이 나옵니다. 가봤자 홍성이니 별 일 있겠는가 하면서도 침낭까지 주렁주렁 달고 자기 몸만한 배낭들을 들고 걷게 되려나 염려하는 찰나에 저희가 내려야 하는 정거장 이름이 나옵니다. '도산 2리 방앗간'에서 내려서 5분 조금 넘게 걸었을까요. 젊은 협업 농장이 보이는 마을 어귀까지 들어섰습니다.

마을 회관으로

오늘과 내일 2박은 마을 회관에서 하게 됩니다. 다른 팀들과 겹치기 때문에 먼저 마을 회관을 쓰게 됐습니다. 저는 오히려 잘 됐다 싶었습니다. 마을 회관은 협업 농장이 시작될 때 사무실 겸, 끼니를 해결하는 곳으로도 사용했던 곳입니다. 협업 농장의 '역사'가 담긴 현장이니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쉽죠. 마을 회관에 짐을 풀고 협업 농장 담당 매니저 분과 담당 스탭 분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서로 인사를 하고, 식자재를 냉장고에 채워넣고는 농장도 한 번 둘러보고, 그 주위도 한 번 산책도 해보고, 쉬기도 하면서 내일을 위한 준비를 합니다.

침묵과 독서

오늘 못할 줄 알았습니다. 일정이 빠듯할 걸로 예상을 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중간에 많이 비어서 침묵과 독서 시간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다만, 농업이나 마을 공동체에 대한 책으로 범위를 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각자 갖고 있는 책이나 마을 회관에 꽂혀있던 책들로 독서 시간을 갖고 나눔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경빈

<스위트 히어애프터> -요시모토 바나나-

이 책은 사요코가 연인 요이치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 있다가 큰 사고를 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요이치가 작품 활동을 할 때 쓰려고 실어둔 파이프가 사요코의 배에 꽂혔지만 그 와중에 사요코는 녹이 슨 파이프를 보며 요이치만은 살아주길 기도했지만 결국 요이치는 죽고 사요코 혼자 살아남게 된다. 깨어나기 전, 오래 전 죽은 애완견과 할아버지를 만나고 온 사요코는 깨어난 후부터 귀신을 보게 된다. 귀신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지내지만 살짝 투명할 뿐이다. 사요코는 요이치의 작품들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모든 일상을 새롭게, 특별하게 보기 시작한다. 책이 거의 그런 묘사로 이루어져 있는데, 보면서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최은기

<언론유감> -고승우-

이 책은 쓰여진 지 20년쯤 되는 책인데 내가 읽은 첫 장에서는 1998년 대선(김대중 대통령) 때의 언론의 부조리함을 말한다. 저자는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사들이 특정 대통령 후보를 몰아주기 식의 보도를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해왔다고 주장하면서 언론의 개혁을 촉구한다. 그리고 그런 몰아주기 현상이 이번(1998년)에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때 처음 실시되었던 여론조사를 중심으로 진행된 여러 언론사들의 몰아주기식 날조 보도도 비판한다. 그때와 지금의 언론들은 꽤나 다르지만 그래도 이 당시 언론들의 실태를 잘 고발하는 것 같아서 좋은 책인 것 같다.

박규빈

<전원 생활도 즐기고 돈도 벌고 - 펜션 창업과 경영> -김수동 외-

오늘은 경로당에 있는 (왜 이게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펜션 사업에 대한 책을 읽었다. 초반이라 국내의 성공 펜션 몇 개가 나왔다. 그 중에 가고 싶은 펜션들이 있었다. 강원도 용평 근처에 있는 샹그릴라와 그린팜이 좋아보였다. 바로 근처에 용평 리조트도 있어서 스키장 갈 때 이 펜션에서 자면 좋을 것 같다. 다들 회사에서, 도시에서 벗어나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펜션을 지었다.

송지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도법 스님-

우리 가족은 딱히 다 같이 믿는다고 하는 종교가 있진 않으나 옛날부터 절에 자주 다녔다. 이번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1주일마다 절에서 49재를 지내고 있고 우리 가족의 돌아가신 분들은 다 절에 모셔져 있다. 그러나 정작 불교에 대해 얘기만 들었지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느티나무 헌책방에 이 책의 자극적인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불교를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부처님, 즉 불교의 교주인 석가모니에 대해서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도법스님은 강조하셨고 나도 공감이 되어서 이 책을 골랐다. 석가모니가 부처가 되기 이전의 전쟁, 싯다르타의 출생, 성장과정, 발신, 출가에 대해서까지 읽었다. 도법스님은 지금의 불교수행인들은 이 과정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다 알아야 하고 본복로 삼아야 한다고 강력히 말한다. 아빠가 불교서적을 좋아하시고 많이 읽으셨는데 이 책을 생신선물로 드릴까 고민 중이다.



(마을 회관 앞에서 찍은 농장 사진, 노을을 채워둔 것처럼 빛이 새어나오는 곳이 조리동입니다. 이 풍경을 보면 여기서 살고 싶어집니다.)

오늘의 저녁 메뉴 - 라면

오늘 저녁 메뉴는 라면이었습니다. 다른 팀이 석식으로 조리동을 사용하기로 되어있어서 겹치지 않게 좀 늦은 7시부터 조리동을 쓰게 됐습니다. 라면을 끓일 준비를 하고 조리동에 들어섰는데 저희의 눈 앞에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저희가 들고간 라면이 너무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는데 바로 전 팀이 식사를 하고 나서 정리가 다 안 된 겁니다. 차라리 남은 잔반이었으면 좀 덜 했을까요. 사람은 없고 불고기, 소세지, 떡볶이, 카레, 밥, 샐러드 등등 음식들이 통에 담겨있는 겁니다. 뷔페식이었는지 음식통들이 두 줄로 쭉 식탁 위에 쭉 늘어져 있는데, 라면은 끓여야겠고 그 음식에 눈은 가고 이런 고문이 또 없지 싶었습니다. 우리 음식 아니니 꿈도 꾸지 말라 하고 라면 먹을 준비를 했습니다. 라면을 끓이고 있는데 다른 팀에 좀 늦게 오신 분이 계시는지 들어오셔서 식사를 하십니다. 저희는 옆에서 끓인 라면을 각자 그릇에 담고 밥기도를 한 후 젓가락을 들었지요. 그때 밖에서 함께 들어오신 한 분이 "저녁은 언제 드셨어요?"하고 물으시길래, 지금 먹는 라면이 저녁이라고 답해드렸습니다. 아, 그러냐고, 나는 간식으로들 드시는 줄 알았다고 하시더니 여기 있는 것들 가져다 먹으려면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팀 식사가 모두 끝나서 괜찮다고 가져다 먹으라고 하시는데, 그 말을 들은 학생들의 해맑은 표정은 좀 과장해서 비유를 하자면 처음으로 '엄마!, 아빠!' 소리를 들은 부모의 얼굴 같았습니다. 라면들을 열심히 먹고는 모두 감사한 마음으로 눈독을 들이던 음식들도 조금씩 덜어왔습니다. ('조금씩'의 기준은 모두 달랐습니다.)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장곡에 오자마자 고생길 펼쳐졌다며 전반부 일정 마무리를 하면서 염려들을 하더니, 이렇게 배가 불러버렸으니 포만감이 곧 이곳에 대한 만족감이 됐습니다. 이 먹은 값을 하려면 내일 아침 작업 시작부터 잘 해야겠죠. 솔직히 저도 그 음식들을 바로 옆에 두고 라면을 먹자니 입맛을 다실 수 밖에 없었고, 학생들한테도 저만한 식사를 준비해 줄 수 없는 것도 미안한 참이었습니다. 참 큰 선물이 됐습니다. 그래서 저희 6명은 정말 잘 먹었습니다.



 

작당, 첫 번째 시간

저녁 식사 후에 모임을 한 번 하자 제안을 했습니다. 갓골 게스트하우스 부엌에서 경빈이와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이 공간이 참 좋고 이런 곳이 우리 학교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뜻이 맞아 떨어졌습니다. 공간을 하나 만들어서, 가끔은 그 안에 숨을 수 있도록, 그 안에서는 절대 말 걸지 않고 침묵하고 책을 볼 수 있는 그런 공간. 경빈이가 즉석에서 던진 '낭만 찻집'이라는 이름으로 이런저런 상상을 해봤습니다. 갓골에서 지내는 동안 좋았다 싶은 것들을 학교로 갖고 가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오후에 여유가 생기니 '이거 한 번 이야기를 해봐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분명 갓골에 대해 모두 긍정적이고, 좋아하는 장소들도 있고, 지역에 대해 배운 것도 있어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농적 삶을, 촌스러움을 학교에서 살리는 아이디어를 모아보자는 생각에 제안을 했습니다. 학생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죠. 정말 배부른 저녁 식사를 마친 저희는 정리를 하고 조금 쉬다가 마을 회관 거실에서 가운데 전지를 펼쳐놓고 둘러앉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디어들을 하나씩 꺼내보자 했습니다. 알루미늄 캔을 이용한 온풍기 아이디어와 4학년들이 하루 마무리도 하고 머물 수 있는 작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고, 중고 매장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초점이 맞춰진 것은 '공간'이었습니다. '공간이 필요하다.' 어디가 좋을까 하다가 전지에 학교 도면을 그리고, 그런 공간이 여기면 좋겠다 하는 곳을 짚었습니다. 학교 부엌과 별 교실 사이, 그 사이에 있는 문을 나서면 펼쳐지는 공간. 소위 앞마당이었습니다. 쓰러질까 위태한 벽 문제도 있고, 하늘로 뻗은 감나무 문제도 있지만, 그곳에 이걸 세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 또한 있지만 상상이야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그 상상을 그림으로 표현해봤습니다. 벽을 허물고, 천장에는 채광창을 달고, 바닥도 평평하게 만들고, 나무든 뭐든 이용해서 벽을 세우고, 전기도 하나 들여놓고... 이런 공간이 하나 있으면 정말 좋겠다 하면서 그림을 채워나갔습니다. 하루닫기를 하기 전 약 20~30분 나눈 이야기라서 이런저런 결말은 나지 않았지만 (며칠 이야기해도 결론은 쉽게 안 나겠지만) 이런 게 배움이다 싶은 마음에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보고 나서 '좋다'하고 지나치는 것과 '좋은데 우리도 이렇게 해볼까'하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좋다고만 하고 지나치면 다음 날 잊게 되지만 만들어보자 하면서 모든 것에 대해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생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실현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의 일입니다. 내일 아침 일정이 있어서 저희는 내일 계속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고는 각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덧붙이기

계속 움직이는 일정 중이라 글을 올리다가 중간에 끊어지기도 하고, '이 내용도 쓸 걸' 하다가 부랴부랴 올리기도 합니다. 여기 협업 농장 쪽은 인터넷이 되지만 마을 회관 쪽은 그렇지 않습니다. 컴퓨터를 들고 와서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글을 올려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글이 좀 늦게 올라왔습니다. 이렇게 실 한 땀 꿰매듯 올리는 글들이 학생들의 농적 삶 시간들을 더 풍부하게 해주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전체 3

  • 2017-10-22 00:37
    낭만 찻집 참 좋네요..
    아이들이 상상하는 공간.. 저도 같이 머리를 굴려보게 됩니다. 어떻게하면 만들어낼 수 있을까.. 멋질것 같다..
    글의 ' 작당'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콕 박힙니다. 멋진 말이에요.
    아이들도 작당을 하고, 부모들도 학교를 위한 작당을 해야겠어요. 같이 작당해볼까요?

  • 2017-10-22 09:38
    아이들 읽은 책과 감상을 훔쳐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네요~
    노을을 채워둔것 같이 빛이 새어나오는 조리동의 표현은 그뤠잇~
    지수 돌아오면 종교론에 대해 이야기 해볼만 하겠네요^^

  • 2017-10-23 10:04
    아주 좋아요. 작당! ^^
    말이 현실이 되는 날이 속히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