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 걷기여행 - 둘째날 4

작성자
최껄껄
작성일
2017-11-03 14:58
조회
1163
2코스에 접어들기에 앞서 바닷가로 내려가는 긴 계단이 보였다.

 

아이들은 여지없이 내려갔다 가자고 한다.

정말 아담하고 아름다운 곳인데 쓰레기들이 쌓여있는 것이 안타깝다.

 

가방을 내려놓고 바닷가로 간다. 돌을 던지기도 하고, 작은 생물들을 관찰하기도 한다.

이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 모둠이 정말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우리 아이들이 참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행복하다.

 



 

약간의 자유시간을 준 뒤에, 침묵과 독서를 했다.

 



 

민수는 자신의 몸에 딱 맞는 침대를 찾았다.

이것이 민수의 매력이다.

어디를 가건, 무얼 만나건 자신에게 딱 맞는 것들을 찾아낸다.

 



 

다른 학생들도 각자의 책을 꺼낸다.

 

바람도 불고.

맑은 햇볕도 내리쬐고.

책도 있고.

 



 

산하의 손에 있는 것이 문고판 <날개>이다.

이상의 <날개>

앞에는 이해할 수 없는 천재시인 이상의 시들이 있다.

 

목포터미널 영풍문고에서 이 책들 샀다고 했을 때,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자신은 할 수 있다고 했지만, 눈치를 보니 자신의 비상금을 사용해야 했기에 가장 저렴한 것을 고른 모양이었다.

그래 그러면 나중에 이야기 좀 해달라고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책에 대해서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나중에라고 꼭 물어봐야겠다.

 

이런 내용을 알고있어서인지, 아래 사진에 보이는 산하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무력감과 좌절감은 개인적인 느낌 때문일 것이다.

산하는 분명 그 책을 재미있게 잘 읽을 것이다.

세상을 너무 많이 아는 어른의 시각이 우리 순수한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

 

뭐, 이런 생각을 하며 나도 침묵으로 빠져들었다.

 



 

침묵과 독서시간이 끝이나고 약간의 자유시간이 있었다.

 

아이들이 해마뼈를 찾아서 가져왔다. 정말 신기하다.

 

이것을 물에 띄어보니, 세로로 떠 있더란다.

아, 정말 신기하다.

 

세상은 이렇게 신기한 것들 투성이인데, 야생성이 거세당한 수많은 관광객들이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깐 이런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이어서 글쓰기 시간을 가졌다.

 



 



 



 

다시 계단을 올라와 2코스를 걷기 시작한다.

2코스는 <연애바위 입구-모래낭길-읍리앞개>로 이어지는 산길이다.

 

시작부터 오르막이다.

많이 쉬어서인지 가뿐하다. 아이들의 말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숨소리 하나 바뀌지 않는다. 안정적이다.

 

나만 숨소리가 가빠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뒤에서 사진을 찍으며 가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이 저렇게 평온하게 가는 것처럼, 이 정도 길은 어려운 길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 작은 섬에 있는 산인데도, 길의 끝을 돌 때마다 전혀다른 풍경들이 나온다.

 



 

나무들로 가득해서 하늘이 안보이기도 하다가, 저렇게 탁 트인 바다가 갑자기 나타나 우리들의 탄성을 유도하기도 한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빛이 쏟아진다.

 

평온하고 일정한 숨소리의 아이들과,

있는 힘을 다 해 뒤를 쫓는 어떤 이는,

 

카메라를 연실 만지며 숨을 몰아쉰다.

 

이 모든 것들을 청산도는 받아준다.

 



 



 



 

거의 끝이 보이다.

3코스를 가기 전에 점심을 먹자.

 

산을 내려오니 이렇게 점심 먹기 좋은 곳이 있었다.

다들 더운지 겉옷을 벗고 아침에 싼 도시락을 꺼낸다.

 

정말 꿀맛이다.

 



 

점심을 먼저 먹은 아이들이 놀면 안 되냐고 묻는다.

 

당연히 된다고 하니 저렇게 뛰어간다.

저 멀리.

 

시트콤의 한 장면 같다.

 

심지어 아래 사진은 아이들이 점으로 보여서 최대한 클로즈업을 해서 찍은 사진이다.

 



 

다시 한 번 궁금했다.

 

저 에너지의 근원은 무엇인가?

저들은 진정 힘들지 않단 말인가?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언제까지 대안학교 교사를 할 수 있을까?'

 

지리산종주도, 바우길도, 자전거국토종주도 아이들과 함께 했는데,

이제는 저 생생한 청춘들과 함께 할 수 없을 수도 있을 날이, 내 생각보다 더 빨리 올 수 있겠다.

 

조금은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아니, 어쩌면 내가 운동을 안 해서 그럴 수도 있다.

너무 감상적으로 빠지지 말자!

 

이런 복잡한 생각들이 준비 안 된 중년의 청춘을 마구 흔들어 놓는다.

 

아..!

 

 

바람이 차다.

 
전체 6

  • 2017-11-04 19:53
    모퉁이를 돌때마다 새로운 장면!
    그게 인생사는 맛인것 같아요.

    저들 중 어느 누군가는 또 30년쯤 뒤에 지금의 저들 또래 뒤에서 카메라를 들고 헉헉거리다가 청산도에서 함께했던 노년이 된 은사님을 떠올리겠지요..

  • 2017-11-04 21:44
    원배 선생님 보약한재 지어드려야 겠네 ㅋㅋ 그래야 오래오래 선생님 하시겠죠~~

    • 2017-11-05 10:53
      오~ 선생님들 보약마련 수익사업 어떤가요! ㅎㅎ (직업이 바뀌지도 않았는데 직업병부터 생기나봐요 ^^;")

      • 2017-11-05 18:20
        수익사업병^^

  • 2017-11-08 10:08
    보약마련 수익사업 좋아요. ㅋㅋ
    원배쌤.. 금요일마다 같이 운동하시죠!

  • 2017-12-13 20:59
    사진이 멋진 건가요 ..너무 아름다워요
    꼭 가보고 싶은곳 추가~~ 청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