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캐리비안에 갔다. (2016.09.16 - 최껄껄)

작성자
허선영 (규빈 4, 시현, 소현 엄마)
작성일
2017-02-23 17:07
조회
1161
사건은 놀이동산을 아주 좋아하는 키가 큰 학생의 입에서 시작되었다.

교사회에서는 1학기를 마무리하면서 하루를 학생들에게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온전히 학생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생각으로 알차게 보내면 그 안에서 학생들이 배울 것이 많겠다는 기대감이 그 이유였다. 교사들은 이 생각에 모두 동의했고, 전체회의 시간에 제안을 했다. 물론 아이들의 반응은 좋았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 여기저기서 각자의 생각을 뱉어냈다. 학생회장은 회의분위기를 정리했다. 아이들은 손을 들어 자기 의견을 표했다.

“영화 보러 가요.”

“맛있는 걸 많이 사서 먹어요.”

“요리 같은 걸해요.”

아이들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캐리비안 베이에 가요!”

오~ 순간, 교실이 술렁이더니, 이내 환호에 가까운 기쁨으로 소리가 변했다. 학생회장이 뒤에 앉아있는 교사들의 눈치를 살짝 살핀다. 학생회장의 미세한 시선 변화를 느꼈는지 눈치 있는 아이들 몇이 뒤를 돌아본다. 교사들이 표정관리를 한다. 교사회의 때 나누었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아이들이 가는 방법과 가격, 가서 무얼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거기 너무 비싸지 않아요?”

“문제 될 것 없어요. 여기 삼성 다니시는 아버지들이 계신데, 부탁을 드리면 티켓을 한 사람당 이천원에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래요? 그게 가능한가요?”

“아마, 거의 가능할 거예요.”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적극적이었고, 자발적이었던가! 이렇게 하나가 되었던 때가 있었던가! 전교생이 똘돌 뭉쳐 이렇게 활발하게 논의하는 이 아이들이 진정 우리 아이들이란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아이들은 벌써 구체적인 방법과 일정을 세우고 있었다. 이렇게 집중력 있게 논의를 끌고 가다니!

‘아, 이게 아닌데….’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었다.

“거기는 밥부터 구명조끼 빌리는 것, 간식까지 모두 사야한다고 들었습니다. 가격이 너무 비싼 것 아닌가요?”

“도시락을 싸가지고 밖에다 두면 됩니다. 간식도 싸 가지고 가요. 들어가기 전에 많이 먹고, 놀다가 배고프면 다시 나와서 먹고 들어가요. 구명조끼도 있는 사람들은 집에서 가지고 가요.”

‘정말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완벽한 녀석들…’

나도 모르게 설득 당하고 있었다. 가격을 가지고 태클을 걸기에는 그 해답이 너무도 완벽했다. 교사들도 서로 눈치만 볼 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학교 수업일수 중 하루를 아이들에게 주었던 이유는 이런 것이 아니었건만, 의도와는 다르게 아이들은 뜻밖의 선물을 받은 듯 들썩거리고 있었다. 수영복을 다시 사야한다는 아이, 무시무시한 미끄럼틀을 타봤다고 자랑하는 아이, 자기는 구명조끼를 두 개 가져와 빌려줄 거라는 아이. 아이들은 이미 캐리비안 해변에서 따뜻한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교사들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이리 와서 발을 담그라고 손짓을 한다. 과감하게 오라고. 괜찮다고. 어서 오라고.

 

비싸지 않다고.

 

‘아…! 이게 아닌데… 정말 발을 담가 봐도 되는 건가? 이렇게 가는 건가? 이건 학교철학에 위배되니 갈 수 없다고 대표교사의 직권으로 안 된다고 하면… 안 되겠지?’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저 캐리비안의 해변에 광풍을 몰아쳐 찬물을 끼얹기에는 아이들의 얼굴이 너무 행복해보였다. 온갖 원망을 평생 들을 것 같은 두려움이 몰려왔다. 회의는 일단락되었고, 날짜도 정했다. 알 수 없는 패배감이 몰려왔다.

 

전체회의가 끝나고 다시 돌아온 교사회의 시간에 캐리비안에 가는 문제를 다시 안건으로 다뤘다. 학교전체가 캐리비안에 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라는 것이 교사들의 주요 생각이었다. 아이들과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이야기하자고 했다. 교사들이 그때 좀 더 용기를 내어 이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 것에 대해선 사과를 하자고 했다. 마음 한 구석에 안심이 일었다.

‘그래, 진작에 이렇게 했어야지!’

내일 점심시간에 숲교실에 모여 이야기하기로 했다. 다음날 아이들이 모였다. 소문이 이미 났는지 아이들 눈에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시작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역시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러다가 기회를 봐서 캐리비안에 가는 것을 취소하자고 말할 참이었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말한다.

“아빠가 가능하데요. 벌써 예약했다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다. 순간 뒤에 서 계시던 선생님들을 보았다. 선생님들 역시 나와 비슷한가 보다. 당황해서인지, 핵심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이야기가 주변을 맴돈다. 안되겠다 싶어서 작정하고 이야기했다.

“사실은 말이죠, 선생님들은 캐리비안 베이에 가는 것을 반대합니다. 공간이라는 것은 말이죠, 시간도 담고 사람도 관계도 담는데, 그러다 보니 그 안에서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려는 곳은 소비문화의 정점이 되는 공간입니다. 소비문화란, 모든 것들을 거래로 만드는 문화를 말합니다. 더구나 그곳은 코인을 충전해서 쓰게 하는데, 이것은 돈에 대한 현실감각을 마비시키기까지 해요. 즐거우니 됐다. 맛있으니 됐다. 오늘 하루 재미있게 놀았으니 됐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 사실은 그게 아닙니다. 우리 학교 전체가 가서 서로를 알아가고 하나가 되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 공간은 우리들의 말초신경이 요구하는 욕구을 충족시켜주는데 그칠 것입니다. 원래 목적인 함께 하는 즐거움을 주기에는 부족해 보여요. 이런 시스템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즐기다 오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말했듯이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사는 데로 생각하게 될까봐 두렵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시선이 떨어진다. 입술이 굳어진다. 반짝거리는 캐리비안 해변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은 저 멀리서 광풍을 동반한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

“…그래요, 지난 회의 때, 선생님들도 다 같이 있었고, 심지어는 여러들이 필요한 정보들도 같이 찾아줬지요. 일정도 확인해주고. 저는 대표교사로서 그때 여러분의 논의를 멈추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좀 더 용기를 갖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은 사과합니다. 선생님으로서 그것은 잘못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렇게 준비를 했는데, 그날 계획을 취소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대표교사로 있는 이상, 아니 이 학교 교사로 있는 이상, 소비문화의 정점이 되는 공간을 아무런 고민 없이 가는 행사에 대해서는 결사반대를 할 것 같아요. 이것은 여러분들이 꼭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기왕에 가는 것 즐겁게 다녀옵시다.”

아이들의 시선에 생기가 돈다.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이렇게 우리는 캐리비안에 가게 되었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모둠을 짠다. 남자와 여자가 섞이고, 선배와 후배가 섞이고, 특수교육 대상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섞이도록 머리를 짜낸다. 도시락도 싸오기로 했고, 간식도 싸오기로 했다. 집에 구명조끼가 있는 아이들은 모두 가져왔다. 여러 개가 있는 아이들은 여분으로 더 가져와 없는 아이들에게 빌려주어 비용을 최소로 했다.

 

임시회의를 마치고 하교하는 학생을 배웅하며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아이가 이야기한다.

“선생님, 저는 캐리비안 베이에 그 가격에 가면 무조건 가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제 값을 내고도 가는데, 그렇게 싼 가격이면 평소 우리 용돈에 비해 약간은 비싸도 정말 싸다고 생각했거든요. 선생님이 소비문화 이야기를 할 때, 사실 조금 충격이었어요. 전 소비문화에 찌들어 사나 봐요.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거든요.”

아이와 이야기를 하며, 모두 그렇다고, 우리가 그런 세상에 산다고, 충격까지 받을 필요가 뭐 있겠냐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반짝이는 캐리비안 해변의 불던 광풍이 햇살 속으로 사라졌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웃으며 그곳에 다녀왔다. 소비문화의 정점인 공간에.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공동체의 가치를 부정하고, 소비가 미덕이라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지난여름에 겪은 우리의 작은 소동은 우리 아이들에게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해주었으리라 기대한다. 그래도 세상은 여전할 테지만 우리 아이들은 세상이 요구하는 데로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평화로운 숲은 그런 공간이다. 함께 하는 것의 가치를 중요시하고, 당연한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공간,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공간, 세상의 평화를 위한 피스메이커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공간.

 

지난여름, 우리는 그렇게 캐리비안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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