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막 그친 숲속을 걸어보셨나요~

작성자
유 성미
작성일
2018-04-24 19:42
조회
198

봄비가 막 그친 숲속을 걸어보셨나요~ 걸어본 사람만이 압니다.


저는 오늘 산에 오르지 않아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네요.


함께 산에 오른 선생님들이 보내주신 사진을 보며 소리와 촉감들을 잠시나마 상상해보는 정도....??


봄비가 막 그친 숲속을 걸어본, 학생들의 글로 오늘의 풍경을 적어봅니다.



다함께 텃밭에게 눈인사하고 모둠별로 나누어져 칠보산으로 향합니다.


    


칠보산을 몇 번 올라보지 못한 학생은 오르면 오를수록 야트막하고 친근한 이 산이 힘겹기만 합니다.


산 길


이 재 혁


오르막길 내리막길


이 많은 산길 울퉁불퉁한 산길


내려갈 때도 힘들고


올라갈 때도 힘든 산길



칠보산을 많이 올라봤던 한창 사춘기 청소년은 이제는 그 존재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경지에 올랐습니다.


칠 보 산


이한결


칠보산은 나한테 의미가 있을 만도하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지금까지 칠보산을 수십번 오르락내리락하고


매일 칠보산을 보고 등교하고


매일 칠보산을 보고 하교하고


우리 집 거실 창문도 칠보산


나라도 칠보산


학교도 칠보산 아래에 있다.


몇몇 사람들은 어릴 때 놀던 산을


어머니와 같다고도 표현하는데,


오늘 막상 칠보산을 생각해보니


나는 칠보산을 의식도 안하는 것 같다.



칠보산을 무지하게 많이 올라봤던 후반기 청소년은 이제 나이가 들어 몸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그  곳


최은기


예전에는 10분도 안되어서 올라가는 그곳이었는데


뛰어다녀도 별로 힘들지 않던 그곳이었는데,


오늘 올라가니 30분이 넘게 걸렸다.


왜 그럴까?


그냥 내 몸이 늙어서 그런 건지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그런 건지


누군가의 “쉬고 가요”라는 말 때문에 나도 쉬고 싶어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 세 가지가 다 합쳐져서 그런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젊은이, 조금 더 나이든 젊은이, 더 나이든 젊은이(교사입니다.)들이 함께 산을 오릅니다. 앞서고 기다려주며 모두가 함께 걸어갑니다.


봄비가 지나간 산길은 연두 빛, 검은 빛이 반짝이고 다시 오지 않는 이 순간의 풍경이 우리를 노래하게합니다.



매일 햇빛이 들어올 때


송연수


오늘 아침에는 햇님이 빛을 쏴아~~뿜고


맑은 하늘에는 샛노란 개망초가 피어있다


잠시 뒤 빗물과 빗물을 머금고 나타난 하늘이


저 곳에 따온


별빛과


달빛과


햇빛을 땅으로 뿌린다.


그리고


다 말랐는지 밤이 하늘을 가지런히 갠다.


밤은 저 곳에서 따온 달과 별들을 가지런히 줄 세우고


잠시 쉬다가


햇님이 밤을 걷어 내고나서


또 오늘 아침에 햇빛이 쫙~들어온다.



검 은


이재서


비를 맞은 나무들


모든 색이 씻겨 내려가고


원래 남아있던 색이 아닌 색


오로지 그것만이 남아있다.


모든 색들의 중심


모든 것들의 가운데


비를 맞으면 자연은


원래의 그것으로 되돌아간다.



비에 젖은 축축한 산


이원지


비에 젖은 산은 축축하다.


나는 축축하게 젖은 산이 좋다.


축축한 산은 어두우면서도 또렷한 색을 가지고 있다.


축축한 산은 시원하고 상쾌하면서 조용하다


마치 젖은 나뭇잎과 흙들이 소리를 다 잡아먹는 것 같다.


   


이렇게 조용히 숲을 걸으니, 내면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유진이의 마음


고유진


나의 마음에 있는 속마음을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나의


마음을 큰 소리로 말하고 싶지만


마음은 마음속에서


‘소곤 소곤’말합니다.


나의 속마음을 내 마음속에


간직합니다.



등산하며 집중하는 소리들


홍성훈


누군가 나보다 느리게 갈 때


내가 빨리 앞질러서 간다.


결코 서두르거나 느리게 가지 않는다.


조용히 혼자 가다보니 평소에는 그냥 지나친


소리들이 들린다.


바람소리, 새소리, 나뭇잎 날리는 소리


자세히 들어보니 내가 나에게 무언가 말하고 있다.


소리에 집중하며 올라오니 아래가 보인다.


땅에서 볼 때는 눈에 보이는 것만 아주 커 보였는데,


산에서 보니 어느 것 하나 커 보이지 않는다.


내 시야기 넓게 보인다.


다시금 생각이 든다.


넓은 시야로 작지만 의미 있는 소리에


집중하며 계속 길을 간다.



산에 오르니 절벽이 보입니다. 저 절벽을 보며, 끝을 생각합니다. 그곳에는 죽음도 있고 사랑도 있습니다.


그 것


박규빈


멀리 있어 보이지만 가까이 있는 것


공포의 대상이자 곁에 따라다니는


언젠가 모두를 집어 삼키는 그것


우리는 이것을 잊으려, 다른 재미를 찾고


그 재미에 휩싸여 그것은 멀리 있다고 망각하네


멀리 있는 것 같지만 늘 항상 곁에 있는 것


버티고 버티다 몸부림치며 끝나는 것


언젠가 나를 집어삼킬 그것



그의 끝없는 사랑


노병찬


그는 사랑을 한다.


어떤 상황이여도 사랑을 한다.


그에게 사랑은 믿음이었고 마음이었다.


그의 사랑은 끝이 없었고 계속 그녀에게 갔다.


그는 아무리가도 낭떠러지가 없는


사랑을 했고 계속 또 앞으로 갔다.


그의 사랑은 어디까지일까?


또 그의 믿음은 어디까지일까?


대체 그의 마음은 어디가 끝일까?


궁금해도 알 수가 없다.



모두가 봄을 바라볼 때, 발에 밟히는 낙엽을 보며, 낙엽이 되어버린 소녀의 시입니다.


낙엽의 추억


전진솔


나무가 물을 빨아 올려


나뭇잎이 생기게 되었다


나뭇잎은 나무를 보며


“내가 단풍이 되면 어떨까?”


하고 속삭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가을이 되자


나뭇잎은 단풍이 되어


울긋불긋 예뿐 조화를 이룹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단풍은 낙엽이 되어


바닥에 떨어져 발에 밟히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지만


낙엽은 바닥에 남아 자신의 추억을 생각합니다.


 


 이곳에는 내 마음에 드는 시는 있어도 잘 쓴 시, 못 쓴 시는 없습니다. 그런 것 없으니 모두가 편안히 자신의 시를 쓰고 함께 나눕니다.


마음에 드는 시 많은데, 모든 시를 소개 못해 아쉽습니다. (다른 시들은 문집에서 만나볼 수 있어요.)


오늘 점심은 봄비를 머금은 창을 배경으로 불은라면을 함께 먹었어요. 짭조름한 라면 국물이 있으니  어제 남은 밥도 말아 먹었죠~ 작년에 우리가 담근 김치도 함께 어우러져, 어제와 과거의 추억을 식판에 담아 모두가 나누어 먹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오늘 하루를 마감하며 드는 생각입니다.


비오는 날 숲을 걸어보세요. 그날의 점심은 라면이 진리입니다.

전체 4

  • 2018-04-24 21:04
    오늘 산에 갔어야 하는데 못가서 아쉽네요.
    아이들의 시를 읽으니 산에 느낌을 알거 같아요.
    재미있기도 하고 공감이 가기도 /헤아리기 좀 어려운시도 쉽게 와닫는 시도 있네요.
    우리 아이들의 시라서 그런지 어느시인의 글보다도 마음이 확~~~~가네요.

  • 2018-04-24 21:49
    비 온 뒤의 숲.
    저도 집앞 청명산에 두어시간 산책다녀왔는데, 우리 아이들도 다녀왔네요. 좋습니다.^^

  • 2018-04-25 00:30
    월요일, 비가 여름비같이 내려 걱정했었는데 이런 선물을 주었네요.
    아무래도 '.. 이 모든것의 놀라움을 불어넣어 주는 신비한 힘'은 중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추장선생님 고맙습니다.

  • 2018-04-25 23:52
    아이들의 시를 읽으니 긴 설명문이나 화려한 사진보다도 더 파노라마처럼 감상이 머리속과 가슴속에 그려지네요~~~